
DGIST, 촉감과 만성통증 가르는 ‘스위치’ 발견…비마약성 진통제 길 열어
촉각과 만성 통증을 조절하는 핵심 분자가 우리 몸의 위치에 따라 정반대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규명됐다.
DGIST 뇌과학과 이효상 교수 연구팀은 척수와 말초 감각신경에 있는 ‘TWIK-1’이라는 포타슘(칼륨) 이온 채널이 촉각과 만성 통증을 조절하는 핵심 분자임을 밝혔다고 30일 밝혔다. 이 채널은 척수에서는 촉각 신호 처리에 관여하지만, 말초 감각신경에서는 신경 손상 이후 통증이 사라지지 않고 지속되도록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신경병증성 통증은 신경이 손상된 뒤 특별한 원인 없이 통증이 오래 이어지는 난치성 질환으로, 지금까지 통증이 왜 지속되는지 그 정확한 기전이 충분히 밝혀지지 않아 효과적인 치료법도 제한적이었다. 연구팀은 통증 자체를 누르는 기존 접근을 넘어 통증의 ‘지속’을 선택적으로 조절하는 새로운 치료 표적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으며, 특히 말초 감각신경의 TWIK-1을 겨냥한 비마약성 진통제 개발 가능성을 제시했다.
‘아픔을 끄는 스위치’라는 통념을 뒤집다
이번 연구가 다룬 무대는 체성감각계다. 체성감각계는 촉각과 통증, 온도 변화 등을 감지하는 신경 시스템으로, 이런 감각은 피부 등에 분포한 말초 감각신경을 통해 척수로 전달돼 처리된다. 문제는 신경이 손상됐을 때다. 신경이 다치면 뚜렷한 원인 없이도 통증이 오래 지속되는 신경병증성 통증이 생길 수 있고, 이는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린다. 그러나 통증이 왜 계속되는지에 대한 기전이 충분히 규명되지 않아 치료법도 제한적이었다.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TWIK-1이라는 포타슘 이온 채널이다. 이온 채널은 세포막에 있는 일종의 ‘문’으로, 칼륨 같은 이온을 세포 안팎으로 드나들게 해 신경세포의 흥분(전기 신호) 정도를 조절한다. 그동안 포타슘 채널은 통증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고 공통적으로 여겨져 왔지만, 척수와 말초 감각신경이라는 복잡한 회로 안에서 TWIK-1이 정확히 어떤 기능을 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연구팀은 특정 유전자의 기능을 인위적으로 없앤 유전자 조작 생쥐 모델을 활용한 정밀 실험으로 이를 조직별로 분석했다. 그 결과, 같은 TWIK-1 채널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는 ‘포타슘 채널은 통증을 억제한다’는 단일한 관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결과다.
이효상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TWIK-1 포타슘 채널이 위치에 따라 촉각을 형성하거나 만성 통증을 유지하는 서로 다른 역할을 한다는 점을 규명했다”며 “나아가 포타슘 이온 채널이 공통적으로 통증을 억제한다는 기존의 관점을 재해석할 수 있는 중요한 실험적 근거를 제시했다”고 밝혔다. 즉 이 발견의 핵심은 단순히 새 분자를 찾은 것이 아니라, 같은 분자의 역할이 위치에 따라 갈린다는 점을 보였다는 데 있다.

척수에선 촉각, 말초에선 ‘통증 지속’…표적이 갈린다
연구팀은 먼저 척수에서 TWIK-1의 역할을 확인했다. 척수의 억제성 신경세포(다른 신경의 활동을 눌러 신호 전달을 조절하는 세포)에서 TWIK-1이 없어지자, 기계적 자극에 대한 반응이 오히려 감소했다. 연구팀은 이를 억제성 신경세포의 흥분성이 커지면서 척수 회로에서 감각 전달이 억제된 결과로 해석했다. 다시 말해 척수에 있는 TWIK-1은 촉각 신호가 전달되는 과정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말초 감각신경에서 TWIK-1을 없앤 경우에는 전혀 다른 양상이 나타났다. 정상적인 감각은 그대로 유지됐지만, 신경 손상 이후 지속되던 기계적 통증은 빠르게 회복됐다. 또한 TWIK-1이 사라지자 손상된 감각신경세포의 과도한 흥분성과 염증 관련 유전자 반응도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말초의 TWIK-1이 만성 신경통으로 생긴 기계적 통증을 ‘지속’시키는 데 관여함을 보여준다.
이 대비가 중요한 이유는 치료 전략의 방향을 바꾸기 때문이다. 말초 감각신경의 TWIK-1을 표적으로 삼으면, 정상 감각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손상 이후의 통증 지속만 선택적으로 누그러뜨릴 가능성이 열린다. 연구팀은 이것이 통증 자체를 억제하던 기존 방식과 차별화되며, 특히 말초 감각신경의 TWIK-1 기능을 겨냥한 비마약성 진통제 개발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TWIK-1은 신경병증성 통증에서 나타나는 이질통(allodynia·평소에는 아프지 않은 약한 자극에도 통증을 느끼는 증상) 조절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연구팀은 실제 치료제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도 함께 밝혔다. 연구팀은 TWIK-1을 표적으로 하는 약물 개발을 위한 후속 연구를 진행 중이며 국내 제약사 연구소와의 협업도 추진하고 있으나, 후보 물질의 효능과 안전성을 검증하는 전임상·임상 연구가 필요하고 실제 치료제 개발까지는 일정 기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