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 전국에 AI 데이터센터·반도체 벨트 짓는다…”AI 수출국으로 도약”
국가 차원의 AI 경쟁력 확보를 겨냥한 전국 단위 AI 인프라 투자 계획이 공개됐다. SK는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생산기지 등 AI 산업의 핵심 인프라를 전국에 구축해 대한민국을 글로벌 AI 강국으로 키우겠다는 중장기 투자 전략을 29일 밝혔다. 이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최태원 SK 회장이 발표한 내용으로, 계획은 연산 인프라와 이를 구동할 반도체를 동시에 키우는 두 축으로 짜였다. 한 축은 SK텔레콤을 주축으로 전국 각지에 총 15G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단계적으로 짓는 것이고, 다른 한 축은 SK하이닉스가 총 1,100조원을 투입해 용인·청주·서남권을 잇는 AI 메모리 반도체 생산벨트를 구축하는 것이다.
SK는 이를 한국이 해외에서 만든 AI 모델과 서비스를 주로 사용하던 ‘AI 소비국’에서 연산 능력 자체를 만들어 공급하는 ‘AI 수출국’으로 위치를 옮기는 기반이라고 규정했다. 다만 발표된 투자의 상당 부분은 향후 AI 수요와 투자 여건에 따라 단계적으로 집행되는 장기 계획이며, 대규모 생산기지를 세우는 데 필요한 부지와 전력·용수 등 기반 인프라 확보는 정부·지자체와의 협력을 전제로 한다.
전국 15GW 규모 AI 데이터센터, 단계적 구축
SK가 투자의 첫 축으로 제시한 AI 데이터센터는 대규모 연산(컴퓨팅) 능력을 제공하는 핵심 인프라로, AI 모델을 훈련시키는 ‘학습’과 학습을 마친 모델이 실제 질문에 답을 내놓는 ‘추론’을 처리하는 시설이다. SK는 이 학습과 추론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고성능 컴퓨팅 인프라 확보가 국가 AI 경쟁력의 핵심 과제로 부상했다고 설명했으며, 데이터센터를 단순한 연산 시설이 아니라 로봇과 피지컬 AI, 헬스케어, 문화, 교육 등 다양한 산업의 혁신을 떠받치는 기반 시설로 규정했다.
SK는 한국이 안정적인 전력 공급 여건과 고성능 AI 반도체 생산기지를 함께 갖춰 데이터센터의 최적 입지로 평가받고 있으며, 이런 강점을 바탕으로 글로벌 빅테크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근거로 SK는 SK텔레콤을 주축으로 총 15GW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단계적으로 구축할 계획이다. 데이터센터 규모를 나타내는 단위인 GW(기가와트)는 해당 시설이 끌어 쓰는 전력 용량을 뜻하며 1GW는 10억 와트에 해당하는데, SK는 우선 1단계로 전력과 부지를 갖춘 여러 지역에 5GW 규모를 짓고 AI 수요와 투자 여건을 고려해 2035년에 추가로 10GW를 순차 확대한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전략적 파트너 투자와 고객사 입주 계약, 프로젝트 파이낸싱 등을 통해 약 1,000조원 규모의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SK는 예상했다.
데이터센터 구상은 이미 일부 사업으로 구체화돼 있다. SK텔레콤은 현재 AWS(아마존웹서비스)와 함께 2027년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 울산 AI 데이터센터를 건설 중이며, 최근에는 엔비디아와 공동으로 차세대 AI 데이터센터인 ‘AI 팩토리(AI Factory)’ 구축 계획을 발표했다. SK는 이렇게 국내 AI 컴퓨팅 인프라를 선제적으로 확충해 대한민국을 아시아·태평양(APAC) 지역의 AI 인프라 허브로 도약시킨다는 목표를 밝혔으며, 울산 데이터센터와 ‘AI 팩토리’는 15GW라는 장기 목표로 가는 초기 단계에 해당한다.

용인-청주-서남권 1,100조원 AI 메모리 생산벨트
두 번째 축인 반도체 투자는 데이터센터 투자와 맞물려 있다. SK는 전 세계적으로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확대되면서 이를 구동하는 AI 반도체 수요도 빠르게 늘고 있으며, 특히 대규모 AI 모델의 학습과 추론에 필요한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함께 증가하면서 메모리 시장 전반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표적인 제품인 HBM(고대역폭 메모리)은 여러 개의 메모리 칩을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를 빠르게 주고받도록 만든 고성능 메모리로, AI 연산에 특히 많이 쓰인다.
SK하이닉스는 이런 시장 변화에 대응해 기술 혁신과 생산능력 확대를 이어가는 동시에 생산기반 자체를 넓힌다는 방침 아래, 총 1,100조원 규모의 중장기 투자 전략을 마련하고 용인-청주-서남권을 잇는 AI 메모리 생산벨트 구축을 추진한다. 기존 생산거점을 고도화하면서 차세대 거점을 단계적으로 확보해 급증하는 글로벌 AI 메모리 수요에 대응하고 안정적인 공급망을 갖추겠다는 것이다. 핵심 거점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당초 2045년이던 완공 목표를 12년 앞당겨 2033년까지 네 번째 팹(fab·반도체를 실제로 만드는 생산 공장) 건설을 마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이후 설비·장비 투자까지 더해 총 600조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나머지 두 거점의 윤곽도 함께 제시됐다. 기존 거점인 청주에는 약 100조원이 투입돼 낸드(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사라지지 않는 저장용 메모리)의 신규 팹 건설과 생산장비 도입이 이뤄지며, HBM 후공정(완성된 칩을 하나의 완제품으로 조립·포장하는 단계)을 담당하는 첨단 패키징 역량도 강화된다. 차세대 거점으로는 대규모 부지 확보가 가능하고 정부·지자체가 전력·용수 등 기반 인프라 구축을 추진 중인 서남권이 준비되고 있으며, 투자가 본격화될 경우 부지 확보와 팹 건설, 생산설비 도입을 포함해 약 400조원이 단계적으로 투입될 예정이다. 용인 600조원, 청주 100조원, 서남권 400조원을 합치면 1,100조원으로, 세 거점이 곧 SK하이닉스 투자 로드맵의 골격을 이룬다.

‘지능 생산 시장’ 구상과 단계적 추진 전제
최태원 SK 회장은 이번 투자의 목표를 ‘지능 생산 시장’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최 회장은 발표에서 “대한민국이 AI를 추진하는 궁극적 목표는 ‘지능 생산 시장’을 활성화해 사회의 고(高)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국민 경제를 성장시키는 것”이라며 “AI 데이터센터 및 반도체 생산 기지 등 SK가 만드는 AI 인프라는 다양한 산업까지 함께 성장하는 발판으로 작용해 대한민국의 핵심 성장 기반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최 회장은 이 같은 인프라 투자가 한국의 위치를 바꿀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프로젝트는 대한민국이 AI를 소비하는 나라에서 AI를 수출하는 나라로 전환하는 근간이 될 것”이라며 “SK는 AI를 통해 대한민국의 성장에 동참하고, 글로벌 AI 생태계를 주도해 나가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SK가 말하는 ‘AI 수출’은 데이터센터라는 연산 기반과 반도체라는 부품을 국내에 대규모로 확보해 AI 연산 능력을 외부에 공급하는 쪽으로 산업의 무게중심을 옮기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발표는 규모 면에서 전례 없는 수준이지만, 실제 집행은 단계적·장기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이 함께 제시됐다. 데이터센터의 추가 10GW 확대는 2035년을 목표로 하고 메모리 생산벨트의 차세대 거점인 서남권 투자는 향후 본격화를 전제로 하는 등, 발표된 투자의 상당 부분은 AI 수요와 투자 여건의 변화에 따라 순차적으로 집행된다. 또한 SK하이닉스는 대규모 생산기지를 구축하려면 넓은 부지와 전력·용수 등 기반 인프라를 신속하고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밝혀, 계획의 실행 속도가 정부·지자체와의 협력과 인프라 확보 여건에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