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GIST, 뇌 신경세포 신호 여닫는 ‘분자 레버’ 세계 최초 규명…난치성 뇌 질환 신약 실마리 찾다
신경세포에서 신호를 전달하는 통로인 칼슘 채널이 어떻게 열리고 닫히는지를 설명하는 새로운 분자 작동 원리가 밝혀졌다.
DGIST는 뇌과학과 서병창 교수 연구팀이 신경세포의 신호 전달에 핵심 역할을 하는 ‘N형 전압 개폐성 칼슘 채널(CaV2.2)’을 조절하는 분자 작동 원리를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고 22일 밝혔다. 이 채널을 통해 칼슘이 세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신경세포가 정보를 전달하는 데 가장 필수적인 단계지만, 채널이 어떻게 여닫히는지 그 구조적 원리는 오랫동안 미지의 영역이었다.
연구팀은 채널을 여닫는 일명 ‘분자 레버’의 존재와 작동 원리를 밝혀냄으로써, 신경병증성 통증과 뇌전증, 자폐 스펙트럼 장애, 알츠하이머병 등 난치성 뇌 질환의 치료제 개발에 새로운 단초를 제공했다.
신경세포가 신호를 전달하는 ‘가장 중요한 문’
신경세포는 전기 신호를 화학 신호로 변환해 다음 세포로 정보를 전달한다.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전압 개폐성 칼슘 채널(전압 변화에 따라 열리고 닫히며 칼슘 이온을 세포 안으로 들여보내는 통로 단백질)이다. 이 채널을 통해 칼슘 이온이 세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신호 전달에서 가장 필수적인 단계다.
이번 연구의 주인공은 그중에서도 N형 전압 개폐성 칼슘 채널(CaV2.2)이다. 이 채널은 신경세포의 축삭 말단(신경세포에서 다음 세포로 신호를 내보내는 끝부분)에 주로 존재하며, 신경전달물질 분비를 조절해 다음 신경세포로 신호를 넘기는 핵심 조절자 역할을 한다. 이 문이 제때 열리고 닫히지 않으면 신호 전달 자체가 어긋날 수 있다.
그런데 이 채널의 개폐를 조절하는 데는 보조 단백질이 관여한다. 칼슘 채널에 결합하는 ‘베타(β) 소단위체’라는 보조 단백질의 종류에 따라 채널이 열려 있는 시간이 달라지는데, 그동안 이 소단위체가 채널의 구조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는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다. 채널이 여닫힌다는 사실은 알아도, ‘왜, 어떻게’ 여닫히는지는 몰랐던 셈이다.

채널을 구부리는 ‘분자 레버’를 발견하다
연구팀은 다양한 베타 소단위체 모델을 비교 분석하다가, 보조 단백질이 결합하는 채널의 특정 부위에 주목했다. 채널의 ‘I-II 루프’라는 부위의 시작점(R370)이 특이하게 구부러져 있다는 점을 포착한 것이다. 루프(loop)는 단백질 사슬이 고리처럼 휘어진 부분을 가리킨다.
분석 결과, 바로 이 R370 부위를 축으로 해당 루프가 마치 ‘레버’처럼 작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합하는 베타 소단위체의 종류에 따라 이 레버가 채널의 구조를 각기 다른 각도로 변화시키며, 그 결과 채널이 열려 있는 방식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지렛대의 받침점 하나를 축으로 힘의 방향이 바뀌듯, 작은 부위의 움직임이 채널 전체의 개폐를 좌우하는 셈이다. 연구팀은 이렇게 분자 레버의 움직임에 따른 칼슘 채널의 구조 변화 모델을 세계 최초로 제시했다.
이 원리는 실제 측정으로도 뒷받침됐다. 연구팀은 채널이 열리고 닫히는 상태를 전기 생리학 기법(살아 있는 세포에서 이온의 흐름에 따른 전기 신호를 직접 측정하는 방법)으로 측정하고 동역학 모델링을 적용해, 이러한 구조 변화가 신경세포의 신호 전달에 매우 중요한 과정임을 입증했다.
알츠하이머·자폐·뇌전증 신약 개발의 새 이정표
이번 발견이 중요한 이유는 칼슘 채널이 여러 난치성 뇌 질환과 깊이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N형 전압 개폐성 칼슘 채널은 신경 신호 전달의 핵심 통로인 만큼, 그 조절에 문제가 생기면 다양한 뇌 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이 채널은 오래전부터 신약 개발의 주요 표적으로 연구돼 왔다.
연구팀은 이번에 밝힌 분자 레버 기작이 칼슘 채널이 관여하는 신경병증성 통증, 뇌전증, 자폐 스펙트럼 장애, 알츠하이머병 등 다양한 난치성 뇌 질환의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채널을 여닫는 원리를 알면, 그 원리를 겨냥해 약물을 설계하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서병창 교수는 “오랜 시간 의문으로 남았던 베타 소단위체 결합에 따른 칼슘 채널의 동역학적, 구조적 변화 원리를 이번 연구를 통해 명확히 규명했다”며 “새롭게 밝혀낸 칼슘 채널의 분자 레버 기작이 향후 뇌 질환 신약 개발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세계적 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2026년 7월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