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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엔비디아, AI 공동연구소 설립…한국어·산업 특화 에이전틱 AI 연구

KAIST와 엔비디아가 서울에 공동 AI 연구소를 세운다. 한국어와 국내 산업에 특화된 '에이전틱 AI' 원천기술을 5년간 3억 달러 규모로 함께 개발한다.

KAIST와 글로벌 AI 컴퓨팅 기업 엔비디아가 한국어와 국내 산업에 특화된 차세대 ‘에이전틱 AI(agentic AI·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하는 인공지능)’를 함께 개발하기 위한 공동연구 거점을 세운다.

KAIST는 김재철AI대학원 서울캠퍼스에 ‘NVIDIA-KAIST AI 공동연구소’를 설립하고 차세대 인공지능 핵심기술 공동연구를 본격화한다고 24일 밝혔다. 협력은 초기 5년간 총 3억 달러(약 4,200억 원) 규모로, 엔비디아가 국내 클라우드 파트너를 통해 매년 5천만 달러(약 675억 원) 상당의 AI 컴퓨팅 자원을 지원하는 것이 뼈대다.

지금까지 한국의 AI 연구는 세계적 수준의 인재를 갖고도 대규모 연산 인프라와 기초연구를 산업으로 잇는 통로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이번 협력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한 연구비 지원이 아니라, 연구인력 지원과 인턴십, 엔비디아 정규 연구직 채용, 대규모 컴퓨팅 자원, 글로벌 공동연구를 하나로 묶은 장기 체계를 표방하기 때문이다. 특히 해외 거대 AI 모델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한국어·국내 산업에 맞는 AI를 국내에서 확보하겠다는 ‘AI 기술 주권’의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배충식 KAIST 총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AI 연구역량과 최첨단 AI 인프라를 결합하는 전략적 파트너십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왜 ‘한국어·산업 특화 에이전틱 AI’인가

이번 협력의 핵심 목표는 ‘에이전틱 AI’다. 우리가 익숙한 챗봇형 AI는 사용자의 질문을 이해하고 답을 내놓는 데서 멈춘다. 반면 에이전틱 AI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일을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하는 AI다. 여러 정보를 분석하고, 필요한 도구를 골라 쓰고, 단계별로 작업을 처리한 뒤 그 결과를 스스로 검토하는 과정을 사람이 계속 개입하지 않아도 수행한다. 질문에 답하는 AI에서 일을 대신 해내는 AI로 넘어가는 흐름의 최전선에 있는 기술이다.

여기에 ‘한국어’와 ‘국내 산업’이라는 두 조건이 붙는 것이 이번 연구소의 차별점이다. 세계적으로 앞서가는 대형 AI 모델은 대부분 영어와 글로벌 데이터를 중심으로 학습돼, 한국어의 미묘한 맥락이나 국내 제조·반도체·바이오·서비스 현장의 특수한 요구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연구소는 이 간극을 메워, 한국어를 잘 이해하고 국내 산업 환경에 최적화된 AI 모델과 에이전트 시스템을 만드는 것을 중점 과제로 삼는다.

연구의 출발점은 엔비디아가 공개한 ‘네모트론(Nemotron)’ 모델이다. 네모트론은 엔비디아가 연구기관과 기업이 자유롭게 쓰고 개선할 수 있도록 공개한 대규모 언어모델(LLM) 계열의 기반 모델이다. 이미 만들어진 이 공개 모델을 토대로 한국어 이해 능력과 국내 산업 활용성을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밑그림을 처음부터 그리는 대신, 검증된 기반 위에 한국형 특화 계층을 얹는 효율적인 방식이다.

여기에 엔비디아의 ‘풀스택(full-stack) AI 기술’이 결합된다. 풀스택이란 AI 반도체(GPU)부터 컴퓨팅 시스템, 개발 소프트웨어, 학습 프레임워크, AI 모델까지 개발에 필요한 모든 단계를 하나의 통합 플랫폼으로 제공하는 것을 뜻한다. 연구자 입장에서는 부품을 따로 맞출 필요 없이 최신 인프라를 곧바로 활용해 대규모 모델을 더 빠르게 개발할 수 있다. 국내 연구자들이 그동안 확보하기 어려웠던 대규모 연산 환경에 접근하는 통로가 열리는 셈이다.

연구소가 다룰 세부 분야도 미래 AI의 핵심을 겨냥한다. 에이전틱 AI 모델과 에이전트 시스템, 한국어에 최적화된 대규모 모델, 산업별 특화 모델에 더해, 추론과 계획 능력을 갖춘 차세대 AI, 그리고 여러 AI 에이전트가 서로 협력하고 결과를 검증하는 기술까지 포함된다. 하나의 똑똑한 AI를 넘어, 여러 AI가 팀처럼 협업하며 서로의 오류를 걸러내는 구조를 연구한다는 점에서 학술적 무게가 실린다.

돈이 아니라 ‘사람’을 붙잡는 설계

이번 협력이 기존 산학협력과 갈리는 지점은 컴퓨팅 자원보다 인재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데 있다. 연구소는 매년 최소 10명의 KAIST 연구자를 지원하고, 이들 각각에게 엔비디아 인턴십 기회를 제공한다. 국내 연구자가 엔비디아의 글로벌 연구조직, 세계적 AI 연구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공동연구를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엔비디아는 우수한 한국 AI 연구자를 정규 연구직으로 채용할 계획이다. 연구소의 연구 지원과 인턴십, 그리고 정규직 채용을 하나로 잇는 설계다. 이는 국내 인재가 도전적인 연구를 하려면 결국 해외로 떠나야 했던 기존 경로를, 한국에 머물면서도 세계적 연구와 장기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경로로 바꾸려는 시도로 읽힌다. 다만 구체적인 채용 규모와 시기는 향후 논의를 거쳐 확정될 예정이다.

‘두뇌 유출’을 되돌리려는 의도는 연구소장 인선에서도 드러난다. 초대 공동연구소장은 다음 달 김재철AI대학원에 부임하는 김현우 박사가 맡는다. 그는 현재 엔비디아에서 세계적 석학 최예진 교수, 얀 카우츠 부사장과 함께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인간의 인지와 발달 과정에서 영감을 받아 더 잘 추론하고 학습하는 AI를 연구해 왔다. 최근에는 국내 최초의 대규모 한국어 페르소나 데이터셋 ‘네모트론 페르소나 코리아’를 공개해, AI 공유 플랫폼 허깅페이스의 트렌딩 데이터셋 순위에서 10일 연속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해외에서 활동하던 연구자가 국내 거점을 이끌게 되는 상징적 사례다.

빌 달리 엔비디아 수석과학자는 “한국은 세계적인 AI 연구자들과 가장 발전된 기술 생태계 중 하나를 보유하고 있다”며 “이 공동연구소는 한국의 산업과 언어, 미래를 위한 AI 모델과 에이전트 시스템 개발을 가속하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송 김재철AI대학원장은 “세계적 연구인재와 AI 인프라, 글로벌 기업의 연구역량을 결합한 새로운 산학협력 모델”이라며 “우수 연구자가 국내에서 세계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관건은 연구 성과가 논문에 머물지 않고 실제 현장으로 흘러가느냐다. 연구소는 학술 연구성과가 국내 기업과 공공기관, 나아가 국가 AI 시스템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세우겠다는 계획을 내걸었다. 기초연구부터 산업·국가 차원의 적용까지 하나로 연결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공동연구소 설립과 연구과제 선정, 연구자 지원, 인프라 제공을 위한 세부 절차는 아직 양 기관이 협의 중이며, 구체적인 연구 착수 시기와 운영 계획은 최종 협의가 마무리되는 대로 확정해 발표될 예정이다. 청사진이 실제 성과로 이어질지는 앞으로의 실행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