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px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지방간 부르는 ‘유전자 스위치’ 규명…원인 되돌리는 치료 표적 제시

간에 지방을 쌓이게 하는 원인이 특정 단백질(DNMT1)의 과잉임을 밝히고, 이를 억제하자 꺼져 있던 유전자가 다시 켜지며 지방과 염증이 함께 줄어드는 것을 확인했다.

간에 지방이 쌓이는 지방간질환의 원인이, 단순한 지방 축적이 아니라 유전자 작동을 조절하는 ‘DNA 스위치’의 이상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생명연)은 노화융합연구단 김미랑 박사 연구팀이 지방간질환의 주요 원인으로 유전자 작동을 조절하는 DNA 스위치 이상이 핵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고 22일 밝혔다. 지방간질환은 전 세계적으로 환자가 급증하고 있지만,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과정에서 어떤 이상이 생기는지는 그동안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특정 단백질 DNMT1을 그 핵심 원인으로 지목하고, 이를 억제하면 질환을 되돌릴 수 있음을 동물 실험으로 확인해, 생활습관 관리에 머물던 지방간 치료를 원인을 직접 조절하는 방향으로 넓힐 가능성을 제시했다.

지방간, ‘지방이 쌓이는 병’을 넘어 ‘유전자 조절의 병’으로

우리 몸의 간은 먹은 음식에서 에너지를 만들고 저장하는 중요한 장기다. 그런데 생활습관이나 대사 이상으로 간에 지방이 과도하게 쌓이면 지방간질환(MASLD, 대사이상 지방간질환)이 생긴다. 이를 방치하면 단순히 살이 찌는 문제를 넘어, 간이 딱딱하게 굳는 섬유화나 간암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문제는 이 질환을 가진 환자가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고 있는데도, 정작 그 안에서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과정에 어떤 이상이 생기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방이 쌓인다는 ‘결과’는 알아도, 그 스위치가 왜 어긋나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가 부족했다.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후성유전학(Epigenetics, DNA 설계도 자체는 그대로 둔 채 특정 유전자를 언제 얼마나 사용할지 결정하는 ‘화학적 꼬리표’의 변화를 다루는 분야)이었다. 유전자라는 설계도가 바뀌지 않아도, 그 위에 붙는 화학적 표시에 따라 유전자가 켜지거나 꺼질 수 있다. 연구팀은 이 조절 시스템의 이상이 지방간질환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파고들었다.

범인은 DNMT1…유전자 입구에 ‘자물쇠’를 채운다

연구팀은 지방간 환자 100여 명의 간 데이터를 정밀 분석했다. 그 결과 특정 단백질인 DNMT1(DNA 메틸화 효소의 일종으로, 유전자에 화학적 표시를 붙여 그 발현을 억제하는 역할)이 과도하게 증가하면, 지방을 분해하고 에너지를 만드는 유전자들의 작동이 억제돼 간에 지방이 축적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작동 방식은 ‘자물쇠’에 비유할 수 있다. DNMT1은 간을 보호하는 유전자의 입구(프로모터)에 메틸기라는 화학적 표시를 붙인다. 이 표시가 자물쇠처럼 작용하면, 대사 조절의 핵심 역할을 하는 전사인자(HNF4α·PPARα, 유전자가 켜지도록 결합해 작동시키는 조절 단백질)가 유전자에 접근하지 못하게 된다. 그 결과 필요한 유전자들이 꺼지면서 간세포의 기능이 망가지고 병이 진행된다.

실제로 DNMT1의 양은 질환의 중증도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다. 환자와 동물 모델 모두에서 DNMT1이 늘어날수록 핵심 전사인자들의 활동은 반대로 줄어드는 역상관관계가 나타났다. 이는 지방간질환이 단순한 지방 축적이 아니라, 유전자 조절 시스템의 이상으로 진행되는 질환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스위치를 다시 켜자 지방·염증 감소…”원인 되돌리는 치료 가능성”

핵심은 이 스위치를 되돌릴 수 있는지였다. 연구팀은 DNMT1의 작용을 막는 물질(Aza-TdC, ㈜피노바이오 제공)을 실험 쥐에 투여했다. 그러자 억제되어 있던 유전자들이 다시 활성화되며 간 기능이 개선되는 변화가 나타났다.

효과는 증상 완화 수준을 넘어섰다. 간 속에 쌓여 있던 지방이 줄어들고, 염증 반응까지 함께 감소하는 것을 확인했다. 잠겨 있던 유전자 조절 부위를 다시 열어주는 이런 방식은 후성유전적 재프로그래밍이라 불리는데, 연구팀은 이것이 간 내 지질 축적과 섬유화를 개선할 수 있는 치료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의 의미는 접근법 자체의 전환에 있다. 생활습관 관리 중심이던 기존 방식을 넘어, 질환의 원인을 직접 조절하는 새로운 치료 방향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김미랑 박사는 “이번 연구는 지방간질환의 원인을 단순한 생활습관이 아닌 유전자 조절 시스템의 변화로 설명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 DNMT1을 조절하는 새로운 치료 전략 개발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