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차그룹, 다 쓴 EV 배터리로 충전소 전력 저장…폐배터리 재사용 실증
수명이 다한 전기차 배터리를 폐기하는 대신 에너지저장장치(ESS)로 다시 활용하는 실증사업이 국내 처음으로 급속충전소와 연계된 형태로 추진된다.
현대자동차·기아는 LG에너지솔루션, 현대엔지니어링, 원익피앤이와 함께 사용 후 전기차 배터리를 ESS로 재사용하는 ‘UBESS(Used Battery Energy Storage System)’ 실증사업을 본격 추진한다고 10일 밝혔다. 5개사는 이날 경기 화성 원익피앤이 동탄 사업장에서 기념행사를 열고 협력 방안을 구체화했다. 전기차 보급이 늘면서 앞으로 쏟아질 사용 후 배터리를 어떻게 처리할지가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이를 버리지 않고 새로운 가치로 되살리는 ‘배터리 순환경제’의 실현 가능성을 실제 사업 환경에서 검증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 쓴 EV 배터리, 버리지 않고 다시 쓴다
전기차 배터리는 주행에 쓰기 어려울 만큼 성능이 떨어져도 완전히 못 쓰게 된 것은 아니다. 차량용으로는 부족해진 배터리라도 여전히 상당한 용량이 남아 있어, 덜 까다로운 다른 용도로는 충분히 재사용할 수 있다. 문제는 전기차 보급이 급증하면서 이런 사용 후 배터리가 앞으로 대량으로 쏟아진다는 점이다.
UBESS는 이 사용 후 배터리를 에너지저장장치(ESS)로 되살리는 개념이다. ESS는 전기가 남을 때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는 대형 배터리 장치를 말한다. 차에서 내린 배터리를 폐기하거나 곧바로 금속으로 분해(재활용)하는 대신, 저장장치로 한 번 더 수명을 연장해 쓰는 ‘재사용’ 방식이다.
이번 실증이 주목되는 이유는 국내 첫 사례라는 점에 있다. 현대차·기아의 전용 전기차 플랫폼 ‘E-GMP’에서 나온 사용 후 배터리팩을 활용하는 국내 첫 사례로, 총 200kWh(킬로와트시) 규모의 UBESS 시스템으로 구축됐다. 200kWh는 일반적인 전기차 여러 대를 충전할 수 있는 수준의 저장 용량이다.
급속충전소에 연결한 이유…’싼 전기 저장, 비쌀 때 충전’
이번 UBESS의 가장 큰 특징은 전기차 급속충전기와 연계해 운영된다는 점이다. 단순히 전기를 저장해두는 데 그치지 않고, 저장한 전기를 전기차 충전에 직접 활용하는 구조다.
작동 방식의 핵심은 ‘시간대별 전기요금 차이’를 활용하는 데 있다. 전기요금이 낮은 시간대(주로 심야)에 UBESS에 전기를 미리 저장해두고, 요금이 높은 시간대나 이용이 몰리는 피크 타임에는 급속충전기가 이 저장된 전기를 꺼내 전기차를 충전한다. 값싼 전기를 모아뒀다 비쌀 때 쓰는 방식이다.
이 구조는 충전 인프라 운영 최적화로 이어진다. 전기차 충전 수요가 몰리는 시간에 전력망에서 곧바로 대량의 전기를 끌어 쓰면 부담이 크지만, 미리 저장해둔 전기를 활용하면 이 부담을 덜 수 있다. 충전소 운영비를 낮추는 동시에 전력망의 순간 부하도 완화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5개사가 나눠 맡은 검증…배터리 순환경제로
실증은 각 사가 전문 분야를 나눠 맡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현대차·기아는 사용 후 배터리를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체계를 만들기 위한 기술 검증과 사업 모델 개발을 맡고, 사용 후 배터리팩을 제공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 배터리팩으로 UBESS를 제작하는 한편, 배터리 진단과 운영 기술을 바탕으로 시스템의 성능과 안전성 검증을 지원한다.
나머지 두 회사는 실제 운영과 사업성을 담당한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전기차 충전 인프라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실제 사업 환경에서의 사업성과 충전 인프라 보급사업과의 연계성을 검토한다. 원익피앤이는 전기차 충전기 제조 기술과 인프라 구축 역량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설비 운영과 기술 검증을 맡는다.
검증 항목은 실사용을 겨냥해 촘촘하게 짜였다. 참여사들은 충전과 방전을 제어하는 알고리즘, 시스템의 안전성과 신뢰성, 사용 후 배터리의 성능 유지 특성, 충전 서비스의 품질과 운영 효율성 등을 종합적으로 점검한다. 특히 이미 한 차례 수명을 다한 배터리가 ESS로서 얼마나 안정적으로 성능을 유지하는지가 관건이다. 다만 이번 사업은 실제 사업화에 앞선 실증 단계로, 사용 후 배터리 재사용과 배터리 순환경제의 실현 가능성을 실제 환경에서 확인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