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게임과 만난 AI, 어떻게 게임 산업을 재편할까?
영상, 음악, 스토리 등 다양한 예술과 첨단 기술의 융합체로 불리는 게임 산업이 AI의 도입으로 새로운 격변기를 맞고 있다. AI가 게임의 본질을 바꿔놓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게임의 기획과 개발에서부터 게임의 플레이 방식과 콘텐츠 생성에 이르기까지 게임을 둘러싼 모든 분야에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AI 게임 분야에 관한 연구자이자, 게임 업계에서 다양한 프로젝트와 활동을 펼치고 있는 홍익대학교 게임학부 강신진 교수를 만나, AI와 만난 게임 산업의 미래와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들어봤다.
게임 산업이나 학계를 가리지 않고 생성형 AI에 관심과 투자를 집중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게임은 항상 최신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발전해 왔다. 모바일이 그랬고 AR/VR이 그랬다. 메타버스 또한 게임 분야에서 많은 관심을 보여왔다. 그러나 생성형 AI는 이전의 다른 기술과 비교해도 더 많은 관심과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AI가 다른 기술들과 달리 게임의 기획 단계부터 개발, 운영, 플레이 방식에 이르는 모든 부분, 그리고 개발 측과 사용자 측 모두에게 광범위한 영향력을 펼치는 기술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다른 기술들은 주로 인터페이스와 관련된 기술인 것과는 달리 AI는 게임 산업 전 분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부분에 대한 기술이다.
게임 개발에 AI를 적용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생성형 AI로 만들어진 콘텐츠를 이용해 기존의 개발 방식으로 게임을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실시간으로 생성형 AI를 연동해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현재 게임 개발 업체들은 첫 번째 방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게임 플레이와 재미라는 요소의 변화보다는 개발 과정의 생산성 향상 측면에서 경제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무한 생성되는 콘텐츠로 사용자들의 게임 경험을 크게 확장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장점이다.
한편 학계에서는 프롬프트로 게임을 생성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과거 랜덤 생성 던전 기술이 생성형 AI로 인해 발전해 프롬프트만으로 MMORPG를 만들고 레이싱 게임을 만드는 등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프롬프트로 마을, 몬스터와 NPC(nonplayer character·게임에서 사람이 직접 조작하지 않는 캐릭터)를 만들고 퀘스트를 생성하는 것도 시도되고 있다. 미래의 게임 개발은 궁극적으로 AI에 크게 의존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게임 분야에서 최근 AI를 활용하는 경우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며, 어떤 분야에 어떤 기술이 활용되고 있나?
게임 분야에서 AI의 활용은 점차 광범위한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기획에서부터 개발과 운영, 플레이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AI가 활용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임 기획과 관련해서 AI는 게임의 각 요소에 대한 파라미터와 NPC 생성 등에 이용되고 있다. 또한 게임 아트와 관련해 이미지 리소스 생성이나 애니메이션 데이터 생성 등에 사용되고 있으며, 프로그래밍에서의 코드 생성에 활용되고 있다. 게임의 운영과 관련해서도 봇 탐지나 사용자 분석, 사용자 이탈 예측 등에 AI가 활발히 적용되고 있다. 특히 게임 기획 업무의 60~70%를 차지하는 수십만 개의 파라미터 생성과 관리에 AI를 적용하며 업무 부하를 크게 줄이고, 기획에 드는 시간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
이전부터 일부 선도적인 개발자에 의해 AI 기술이 제한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 전이다. 다만 신기술을 게임에 적용하려면 R&D 비용과 인력 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결과물에 대한 확신이 없이는 실제 게임 개발에 활용이 어렵다. 하지만 최근 1~2년 사이 생성형 AI가 보여주는 놀라운 결과물로 인해 확신을 갖게 된 게임 업계에서는 실무에서도 본격적으로 AI를 적용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여기에 유니티(Unity)나 언리얼(Unreal)과 같은 게임 엔진들이 AI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게임 개발 과정에서 AI를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 또한 게임 개발에 AI 도입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제는 게임 개발 업체 내부에서는 AI 기술 적용을 위해 사내 설득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어졌다. 이는 산업계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게임 개발팀 내부에 의사 결정 허들이 낮아지고, 관련 시도를 하는 개발자가 늘어날수록 실질적인 결과물은 증가한다.
사람보다 게임을 더 잘하는 AI가 놀라움을 주고 있다. 이미 사람의 수준을 넘어선 체스나 바둑은 물론 일반 비디오 게임을 플레이하는 AI까지 등장하고 있다. 과연 이런 AI는 왜 개발되고 있고, 이런 개발이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는가?
공학적인 측면에서 게임은 현실 세계의 규칙을 간략화한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현실 세계의 복잡한 문제를 게임 세계에서 먼저 검증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체스나 바둑은 비교적 규칙이 단순한 퍼즐 게임이기에 이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초기 AI 설계에 큰 도움이 됐다.
학계에서 AI 기술 발전의 목표로 삼고 있는 인간과 유사한 지능, 즉 범용인공지능(AGI)에서는 이미지 정보 인식 기술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게임은 특히 이런 이미지 인식 기술을 개발하고 테스트하는 데 최적의 조건을 제공한다. 어떤 AI 모델이 게임 내 이미지 정보만으로 원활한 게임 플레이가 가능해진다면, 이 AI는 현실 세계에서 카메라 이미지 정보만으로도 목표로 하는 작업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락스타 게임즈(Rockstar Games)의 GTA 5(Grand Theft Auto V) 게임 내에서 자동차용 자율주행 AI를 강화학습으로 학습시켰던 과거의 시도처럼, 게임을 AI의 학습과 평가를 위한 시뮬레이터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게임을 플레이하는 AI에 대한 연구가 점점 더 많이 이뤄질 것이다.
다른 산업 분야를 위해 개발된 AI 기술이 게임에 적용된다. 반대로 게임을 위해 개발된 기술 또한 다른 산업 분야에 활용되는 경우가 늘고 있는가?
앞서 설명한 AI 연구나 AGI 연구에 필요한 이미지 인식 기술 외에, 게임을 위한 기술이 다른 산업 분야에 활용되는 대표적인 경우로는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기술이 있다. 이는 현실 세계와 유사한 세계를 메타버스 세계 내에 구축하고, 이 안에서 현실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접근 방식이다.
이 기술은 공장 내 레이아웃을 최적화하거나, 도시 내 군중의 흐름을 최적화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런 실험은 현실 세계에서는 매우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게임 기술에 기반한 디지털 트윈 영역에서는 단순 모델링된 에이전트나 NPC를 이용해 비교적 적은 비용과 노력으로 반복적인 실험을 수행하고 최적화된 값을 찾아낼 수 있다.
이외에도 게임은 우리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다양한 곳에 적용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10대들은 모바일 기기의 확산으로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접하며 성장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이들 세대에게 게임의 문법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들에게 게임이 가진 공정한 경쟁, 즉각적인 보상, 개인화된 만족 등의 속성은 이상적이면서도 범용적인 세계의 규칙이다. 따라서 이런 게임의 기술과 문법을 이용한 다양한 서비스와 상품이 등장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인디 게임 등 저예산 게임에서부터 AI가 적극적으로 도입될 것이라는 예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AI가 게임에 도입되면서 게임 분야는 다양한 변화를 겪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적인 측면에서는 실험적인 인디 게임을 통해 그 가능성을 검증하기 시작할 것이고, AI의 가능성을 확인한 이후에는 대형 게임업체들도 경쟁적으로 AI를 도입하기 시작할 것이다.
프롬프트를 이용한 게임 개발이나, 생성형 AI를 이용한 이미지, 음악 등 콘텐츠 생성이 이뤄지면서 소규모 개발 스튜디오나, 개인 개발사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 아이디어만 있다면 얼마든지 뛰어난 게임을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특히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게임은 LLM 기술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분야라는 점에서 많은 인디 게임 개발자들이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생성형 AI로 인한 게임 개발의 낮아진 진입 장벽은 게임 개발의 민주화라는 측면에서는 분명히 반길만한 부분이지만, 낮은 수준의 양산형 콘텐츠가 난립할 것에 대한 대비 또한 필요하다. 생성형 AI로 인한 양산형 콘텐츠의 난립은 이미 다른 분야에서는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며, 게임도 이런 흐름을 그대로 답습할 것으로 보인다.
초기에는 생성형 AI의 결과물을 신기해 하지만, 양산형 콘텐츠의 난립이 시작되면 소비자들은 생성형 AI로 만든 콘텐츠를 수준이 떨어지는 콘텐츠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수준 낮은 콘텐츠가 양산됨에 따라 게이머들이 해당 산업군 전체를 평가절하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
게임에 AI가 융합되면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 등 우리가 고민해야 할 부분은 무엇이 있는가?
조만간 게임 개발 업체, 서비스 업체들이 AI 기술 도입으로 발생하는 새로운 형태의 비용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AI 모델의 학습에서부터 서비스와 클라우드 서비스에 드는 비용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산업계에서는 이 부분에서 타협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외에도 AI 기술과 관련된 다양한 부작용이 게임 산업에도 그대로 재현될 것이다. 예를 들면 저작권이나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된 이슈는 물론이고 AI 모델의 편향성과 같은 문제 또한 게임 분야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게임 개발 업체들이 가장 혼란스러워하는 부분은 저작권 문제다. 지금까지 게임 업계는 타 산업 분야에 비해 저작권에 대해 다소 관용적인 해석을 하는 편이다. 하지만 실제 작업자 입장에서는 이를 어느 정도로 적용해야 할지 불명확하다는 점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조금씩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고 있다. 대형 게임 공급 플랫폼인 스팀(Steam)의 경우 초기에는 생성형 AI 기반 게임의 판매를 금지했었지만, 이제는 ‘사전 생성’과 ‘실시간 생성’으로 구분하고 불법 콘텐츠를 포함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따를 경우 판매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등 시장의 변화가 이미 시작됐다.
- 강신진 홍익대학교 게임학부 교수는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에서 콘솔 게임 개발부터 시작해, 엔씨소프트의 MMORPG인 ‘아이온’ 개발에 참여하는 등 게임 업계에서 시작해, 현재는 홍익대학교 게임학부 대학원 EGLAB(Evolutionary Game LAB)을 맡고 있다. 그는 현재도 많은 게임 개발에 직접 참여하면서 학계와 산업계 양쪽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