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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ST, 간 전이 대장암 ‘약점’ 찾았다…장기별 맞춤 전이 치료 단초

간으로 옮겨간 대장암 세포가 특정 생존 신호를 차단하면 유독 약해진다는 사실이 규명됐다. 장기별로 전이암의 약점을 겨냥하는 맞춤 치료의 단초다.

암세포가 다른 장기로 옮겨간 직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초기 과정을, 장기별 조직 환경을 실험실에서 재현해 관찰하는 기술이 개발됐다.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조승우·박태은 교수팀은 장기별 주변 조직을 재현한 배양 시스템을 만들어 대장암 세포의 전이 초기 적응 과정과 간으로 전이된 대장암의 취약점을 규명했다고 17일 밝혔다. 암 사망의 상당수는 처음 생긴 종양이 아니라 다른 장기로의 전이와 관련되지만, 암세포가 낯선 장기에 도착해 어떻게 자리 잡는지 그 초기 과정은 관찰하기 어려웠다. 환자에게서는 이미 종양이 형성된 뒤에야 발견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는 그 ‘초기 적응’을 체외에서 들여다봄으로써, 전이된 장기별로 암의 약점을 겨냥하는 맞춤형 치료의 실마리를 찾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관찰하기 어려웠던 ‘전이 초기 적응’을 재현하다

암이 무서운 이유는 다른 장기로 퍼지는 ‘전이’에 있다. 그런데 암세포가 원래 있던 곳을 떠나 낯선 장기에 도착한 직후, 새 환경에 어떻게 적응해 자리 잡는지는 그동안 제대로 연구되지 못했다. 환자의 몸이나 동물 모델에서는 이미 전이가 상당히 진행된 뒤의 병변만 관찰할 수 있어, 결정적인 ‘초기 적응’ 단계를 따로 떼어내 보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 초기 적응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것이 ‘세포외기질(ECM)’이다. 세포외기질은 세포 사이를 채우고 세포를 둘러싸 지탱하는 물질로, 세포 표면의 수용체와 상호작용해 성장과 생존에도 영향을 준다. 중요한 점은 이 세포외기질의 성분이 장기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암세포가 어느 장기에 도착하느냐에 따라 마주하는 환경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연구팀은 이 점을 실험실에서 재현했다. 장기에서 세포를 모두 제거하고 세포외기질만 남긴 젤을 만든 뒤, 여기에 환자에게서 얻은 대장암 세포를 넣는 방식이다. 사람과 조직 성분이 비슷하고 충분한 양을 확보할 수 있는 돼지의 대장·간·폐·뇌 조직에서 4종의 배양 재료를 만들었다. 기존 오가노이드 배양에 널리 쓰이던 ‘매트리젤’이 마우스 종양에서 추출한 것이라 개별 장기의 고유한 환경을 반영하기 어려웠던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대장암 세포의 전이 초기 적응 과정을 분석하는 실험 모식도

같은 암도 ‘이사 간 곳’ 따라 달라진다

실험 결과는 분명했다. 똑같은 대장암 세포라도 어느 장기의 세포외기질에서 키웠느냐에 따라 종양 덩어리가 만들어지는 정도와 유전자 작동 방식이 다르게 나타났다. 암세포가 주변 조직에 맞춰 어떤 유전자를 활성화할지를 조절하며 적응해 나간다는 의미다.

이 변화의 핵심은 ‘후성유전적 변화’다. 유전자 자체(DNA 서열)를 바꾸지 않으면서도 어떤 유전자를 켜고 끌지를 조절하는 것을 말한다. 연구팀은 이를 추적하기 위해 ‘ATAC-seq(어택시퀀싱)’이라는 분석 기법을 썼다. DNA는 평소 단백질에 감겨 정리돼 있는데, 이 중 느슨하게 풀린 부위는 그 유전자가 발현될 준비가 됐다는 신호다. 어느 부위가 새로 풀리는지 보면, 암세포가 낯선 장기에 적응하려고 어떤 유전자를 동원하는지 알 수 있다.

분석 결과, 대장 유래 환경에서는 대장암 본연의 특성이 잘 유지된 반면, 간·폐·뇌 유래 환경에서는 배양 초기부터 유전자 작동 양상이 각 장기에 맞게 빠르게 재편됐다. 암세포가 도착한 장기의 환경을 ‘읽고’ 스스로 상태를 바꾼다는 것을 실시간에 가깝게 확인한 것이다.

간으로 간 대장암의 ‘아킬레스건’ c-MET

가장 주목되는 것은 간 환경에서 나타난 변화다. 간 조직 배양 재료에서는 유전자 작동을 조절하는 단백질 ‘HNF4A’의 생성이 늘었다. 그리고 이 HNF4A를 억제하자 작은 종양 덩어리가 형성되는 비율이 크게 줄었다. 간에 적응한 대장암이 특정 유전자 조절 프로그램에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더 결정적인 발견은 ‘c-MET’이라는 단백질이었다. c-MET은 세포가 생존 신호를 받아들이는 ‘수신기’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다. 연구팀이 이 c-MET을 차단하는 약물을 처리하자, 간 환경에서 키운 대장암 세포의 생존율이 크게 떨어졌다. 반면 일반 배양 재료에서는 반응이 미미했다. 간으로 전이된 대장암에만 유독 잘 듣는 ‘아킬레스건’을 찾아낸 셈이다.

이 발견의 의미는 ‘맞춤형 전이 치료’의 가능성에 있다. 같은 대장암이라도 전이된 장기에 따라 유전자 작동과 생존 방식이 달라지므로, 그 장기에 특화된 약점을 골라 공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앞으로 다양한 암종으로 확대하고, 면역세포까지 함께 배양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면역항암제의 효과와 독성을 평가하는 데도 활용할 계획이다. 다만 이번 연구는 체외 배양 시스템에서 확인한 기초 단계로, 실제 치료로 이어지려면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