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 전력을 공급할 재생에너지 물질 매장
재생에너지로 전 세계에 전력을 공급하려면 많은 원재료가 필요하다. 좋은 소식은 지구에 알루미늄, 강철, 희토류 금속 매장량이 충분하다는 새로운 분석 결과가 발표됐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 지도자들은 2015년 파리협정(Paris Agreement)에서 지구 온도 상승 폭을 1.5℃ 이내로 제한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새로운 인프라를 많이 구축해야 한다. 지난 1월 마지막 주, 저널 <줄(Joule)>에 발표된 이번 연구의 가장 야심 찬 시나리오에서도 필요한 물질의 매장량이 재생에너지로 전 세계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또한 분석에 따르면 해당 물질들을 채굴하고 가공하는 과정에서 기후 목표 이상으로 지구 온도를 높일 정도의 탄소 배출량이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예측됐다.
그러나 이 모든 좋은 소식에는 한 가지 함정이 있다. 기술적으로는 재생에너지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물질을 충분히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해당 물질을 채굴하고 가공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작업을 책임감 있게 하지 않으면 필요한 물질들을 사용 가능한 형태로 만드는 과정이 환경 피해나 인권 침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기후 목표 달성에 필요한 물질 수요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 이번 연구에 참여한 연구원들은 탄소 배출이 적은 전기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17개 주요 물질을 조사했다. 청정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각 물질의 양을 추정하고 지질학적 매장량에서 해당 자원(또는 해당 자원을 만드는 데 필요한 원재료)을 얼마나 사용할 수 있는지에 관한 추정치와 비교했다. 지질학적 매장량은 경제적으로 회수할 수 있는 지구상의 총 물질이 포함된다.
대부분의 재생가능 기술에는 알루미늄, 시멘트, 강철 같은 벌크 물질(bulk material)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외에도 중요한 특수 재료들이 있다. 예를 들어 태양광 패널의 핵심 재료인 폴리실리콘(polysilicon), 풍력 터빈 블레이드의 유리섬유, 모터의 희토류 금속 등이다.
<에너지 기술에 필요한 물질들>
차트: MIT 테크놀로지 리뷰 Casey Crownhart
* ‘기타 기술’에는 화석연료, 지열, 수력 및 원자력이 포함된다.
재생에너지 생산에 필요한 물질은 우리가 구축하는 새로운 인프라의 종류와 해당 인프라의 구축 속도에 따라 달라진다. 가장 야심 찬 기후 행동 시나리오를 적용하면, 지금부터 2050년까지 에너지 인프라 구축에 거의 20억 톤의 강철과 13억 톤의 시멘트가 필요하다.
풍력 터빈의 자석에 사용되는 희토류 금속인 디스프로슘과 네오디뮴은 향후 수십 년 동안 생산량을 4배 늘려야 한다. 태양전지용 폴리실리콘은 또 다른 인기 소재가 될 것이다. 지금부터 2050년까지 폴리실리콘의 세계 시장은 150%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브레이크스루 연구소(Breakthrough Institute)의 기후 및 에너지 팀 공동 책임자이자 이번 연구의 저자 중 한 명인 시버 왕(Seaver Wang)에 따르면, 연구팀이 검토한 모든 시나리오에서 지구 온도 상승폭을 1.5℃ 이하로 유지하는 데 필요한 물질이 전 세계 지질학적 매장량의 ‘아주 적은 일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매장량이 충분하다고 해도 해당 물질 채굴에는 결과가 따른다. 연구팀에 따르면 지금부터 2050년까지 이러한 중요한 물질을 채굴하고 가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총 29기가톤에 달한다. 이러한 배출 대부분은 폴리실리콘, 철강 및 시멘트로 인한 것이다.
이러한 물질들을 채굴하고 가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총배출량은 상당하지만, 사실 향후 30년 동안 이 물질들이 뿜어낼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모두 더해도 화석연료가 발생시키는 1년치 전 세계 배출량보다도 적다. 왕은 화석연료를 대체할 청정에너지 기술을 통해 절약하는 비용이 그러한 초기 배출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을 것이라고 말한다. 철강이나 시멘트 같은 중공업에서 나오는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면 재생에너지 인프라 구축이 기후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번 연구는 전기를 생산하는 기술에만 초점을 맞췄다. 전기자동차나 전력망 저장용 배터리처럼 전기를 저장하고 사용하는 데 필요한 모든 물질을 포함하지는 않았다.
배터리 물질 수요는 지금부터 2050년까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 세계은행(World Bank)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전기차 및 전력망 저장 시스템에 대한 예상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연간 흑연, 리튬, 코발트 생산량을 2018년 기준 450% 이상 늘려야 한다.
그러나 왕은 배터리 물질을 고려하더라도 기본적인 요점은 동일하다고 강조한다. 왕에 따르면 가장 수요가 높은 경우를 가정하더라도, 청정에너지 인프라에 필요한 물질들의 전 세계 매장량은 충분하다.
어려운 부분은 그런 물질을 채굴하는 것이다. 일부 물질, 특히 배터리에 필요한 물질의 생산을 늘리면 사회적, 환경적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세계은행의 에너지 및 채굴 담당 글로벌 책임자인 데메트리오스 파파타나시우(Demetrios Papathanasiou)는 “우리가 채굴에 관한 문제를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구리를 예로 들면 우리는 처음 채굴을 시작한 이래로 수천 년 동안 전 세계에서 약 7억 톤의 구리를 채굴했다. 파파타나시우는 기후 목표를 달성하려면 우리가 향후 30년 동안 7억 톤의 구리를 추가로 채굴해야 한다고 말한다. 수천 년 동안 채굴한 양을 30년 만에 채굴해야 하는 것이다. 매장량은 충분하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목적이 화석연료든 재생에너지든 상관없이 채굴 자체가 환경에 상당한 피해를 줄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 서부를 예를 들면, 구리나 리튬 같은 광물 채굴용 광산 후보지들은 원주민을 거주지에서 강제로 몰아내고 환경오염을 일으킬 수 있다.
노동 문제도 있다. 오늘날 이런 물질들은 부당하거나 노동 착취 환경에 놓여있는 노동자들이 채굴하는 경우가 있다. 가령 아동 노동을 금지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콩고민주공화국의 코발트 광산에서는 아동 노동이 만연하다. 또한 중국의 폴리실리콘 공정은 강제 노동과 연결되어 있다.
파파타나시우는 깨끗한 미래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물질을 사람이나 환경에 피해를 주지 않고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과정에 주안점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우리에게 필요한 물질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시간이 많지 않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