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aliban, not the West, won Afghanistan’s technological war

아프간 기술전의 승자는 탈레반이다

아프간 전쟁에 뛰어든 미국이 이끄는 연합군은 탈레반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화력과 장비를 갖췄고, 자금도 훨씬 더 풍부했다. 그러나 전쟁 중에 일어난 기술 발전을 가장 유리하게 활용한 쪽은 연합군이 아닌 탈레반이었다.

끔찍한 인명 피해에도 불구하고 전쟁 중에 종종 혁신적 기술이 개발되곤 한다. 물론 반대로 그런 피해가 나기 때문에 혁신적 기술이 개발되는 것일 수도 있다. 가령 1797∼1815년 프랑스혁명 당시 프랑스가 나폴레옹 1세의 지휘 하에 유럽의 여러 나라와 싸운 나폴레옹 전쟁(Napoleonic Wars) 중 식량 전달 과정에서 음식이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등장한 게 통조림이었다. 또 1861~1865년 일어난 남북 전쟁 때는 잠수함 기술이 발전했다. 제2차 세계대전은 복엽기(複葉機), 기병, 마차를 갖고 시작했지만, 종전 무렵에는 레이더, V2 로켓, 제트 전투기, 원자폭탄 등이 등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국이 암호 해독본부인 브레츨리 파크(Bletchley Park)에서 독일군 암호를 해독한 걸 계기로 컴퓨팅 혁명의 서막이 열렸다. 

전쟁의 승자는 늘 기술적으로 가장 앞선 쪽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새로운 발명품들은 승리한 군대가 변화한 환경에 적응할 수 있게 해주고, 새로운 시스템은 그들이 공격 목표를 추적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 신무기는 이전보다 더 효율적으로 적을 무너뜨릴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의 사정은 다르다. 가령 드론 전쟁이란 기술적 발전이 있었던 것은 맞다. 그러나 미국과 동맹국들이 이뤄낸 이런 발전은 이전에 목격됐던 발전만큼 인정받지 못했고, 일부 전문가들의 주장대로 중대한 의미를 갖지도 않았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과 달리 지난 20년 동안 이어진 아프간 전쟁 중 일어난 기술적 발전은 서방 세계보다 탈레반에 더 많은 도움을 줬다고 볼 수 있다. 이 싸움을 혁신 전쟁이라고 한다면 승자는 단연코 탈레반이었다.

좀 더 부연 설명을 해보자. 서양의 연합군은 시종일관 거의 같은 방식으로 전쟁을 치렀다. 2001년엔 1955년 처음 취역했던 것과 같은 B-52 폭격기를 갖고 첫 공습을 단행했고, 올해 8월에는 미군 주둔 종료를 뜻하는 공격도 같은 폭격기를 갖고 했다. 

반면 탈레반은 큰 도약을 이뤄냈다. 그들은 AK-47과 다른 간단한 재래식 무기로 무장한 채 전쟁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휴대폰과 인터넷을 이용한다. 이는 단순히 무기와 명령 및 통제 시스템을 개선하는 차원을 벗어나 그들보다 더 중요한 전략적 통신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작전을 수행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처럼 안타깝다고 할 만큼 불균등하게 분산된 기술적 성과는 어떤 결과로 이어졌을까?

생존과 선택의 갈림길

탈레반에게 아프간 전쟁은 생사가 걸린 전쟁이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가들이 파견한 수십 만 명에 이르는 외국 군대와 맞서며 지상과 공중에서 동시에 쫓긴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적응해야 했다. 그들의 전투 장비 대부분은 단순하고 유지와 관리가 쉬운 반면(탈레반은 종종 자동 소총, 탄약, 무전기, 그리고 두건 정도만 갖고 다닌다), 그들은 다른 저항 단체로부터 새로운 기술을 찾거나 자신만의 기술을 개발해야 했다. 

한 가지 대표적인 예가 ‘급조 폭발물’로 불리는 IED(Improved Explosive Device)다. 이런 식의 간단한 무기는 다른 어떤 무기보다 더 많은 연합군 사상자를 냈다. IED는 원래 지뢰처럼 압력판을 누르면 작동했지만, 전쟁 중반 탈레반은 휴대폰 신호로 어디서나 폭발할 수 있게 진화시켰다. 탈레반의 기술적 기준치가 낮았다는 점에서 그들이 이뤄낸 혁신은 더욱 큰 의미를 띤다. 

그러나 탈레반이 진정한 기술적 진보를 이뤄낸 것은 전략적 차원에서다. 과거의 단점을 날카롭게 분석한 그들은 이전 정부 활동을 하면서 드러냈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1996~2001년 사이에 그들은 은둔하길 선호했고, 그들의 지도자 물라 오마르(Mullah Omar)의 사진은 단 한 장만 공개됐다. 그렇지만 이후 탈레반은 국내외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정교한 공보팀을 만들었다. 이 공보팀은 휴대폰으로 IED 공격 장면을 찍은 후 다수의 탈레반 트위터 계정에 업로드했다. 신병 모집, 자금 모금, 사기 진작이 목적이었다. 또한 소셜미디어에서 ‘ISI 지원’과 같은 주요 문구를 자동으로 스크랩한 다음 온라인 봇(Bot) 부대를 동원해서 그런 운동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한 메시지를 보내는 기술을 활용했다. ISI는 탈레반과 관련이 있는 파키스탄 정보부다.

연합군의 경우 상황은 사뭇 달랐다. 그들은 우주에서의 감시에서부터 로봇과 드론과 같은 원격 작동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계적 수준의 기술을 활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아프간 전쟁은 생사가 걸린 전쟁이 아니라 언제라도 중단할 수 있는 선택의 전쟁이었다. 이 때문에 그들의 기술 상당 부분은 전면적 승리를 거두기보다는 사상자 발생 위험을 줄이는 데 동원됐다. 연합군은 병사를 위험으로부터 구해줄 수 있는 드론 같은 무기나 치료용품 전달 속도를 높일 수 있는 기술에 적극 투자했다. 또 무장 헬리콥터, 방탄복, 도로 폭탄 탐지 등 적군과 거리를 유지하거나 아군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도구들에도 투자를 늘렸다. 

연합군의 군사적 차원에서 아프간이 아닌 다른 곳에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다름 아닌 강대국들 사이의 싸움 말이다. 기술적으로 이는 중국이나 러시아의 극초음속 미사일 같은 미사일 개발에 투자하거나 그들보다 앞서기 위해 군사용 인공지능에 투자하는 걸 말한다.

이 두 세계 사이에 끼인 아프간 정부는 결국 연합군보다 탈레반과 더 많은 공통점을 갖게 되었다. 그들에게 아프간 전쟁은 선택해서 하는 전쟁이 아니라 목숨이 달린 근본적인 위협이었다. 그러나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과 같은 방식으로 발전할 수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발전은 외국 군대가 기술적으로 발전된 군대를 파견했다는 바로 그 사실로 인해 지장을 받았다. 즉, 아프간 군과 경찰이 분명 직접 참전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상자가 났지만, 그들이 직접 첨단 시스템을 만들거나 심지어 운영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 서방 국가들은 아프간 정부가 유지되지 못하거나 탈레반의 손에 넘어갈까 우려한 나머지 그들을 첨단 무기로 무장시키길 꺼렸다. 

아프간 공군을 예로 들어보자. 그들은 24대도 안 되는 프로펠러 항공기를 갖고 훈련받았다. 최첨단과는 거리가 먼 항공기였다. 그리고 미국과 협력하다 보니 자유롭게 다른 국가로부터 기술을 이전받을 수도 없었다. 이것이 사실상 첨단 기술 발전을 가로막았다. 

이러한 문제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기술은 분쟁의 원인도 승리의 보증도 모두 아니다. 그보다 그것은 뭔가를 가능하게 해줄 뿐이다. 그래서 초보적인 무기조차도 온갖 발전을 위해 애쓸 준비가 되어 있고, 또 실제로도 그럴 능력이 있는 의욕적이면서 인내심이 있는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면 싸움을 승리로 이끌 무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내일의 전쟁터가 아프간과 많은 공통점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해준다. 우리는 가장 강력한 화력을 가진 군대가 승리하는 기술적 분쟁을 덜 보게 되고, 구식과 신기술이 나란히 쓰이는 광경을 더 자주 목격하게 될 것이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분쟁이 그런 좋은 사례에 해당한다. 우리는 시간이 갈수록 그런 사례를 더 자주 보게 될지 모른다. 좋은 기술을 갖고 있다고 해서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어느 한쪽이 생사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면 혁신은 분명 그들에게 승리를 가져다줄 수 있다. 

크리스토퍼 앵커슨(Christopher Ankersen)은 뉴욕대학의 국제학과 부교수다. 2005년부터 2017년까지 유럽과 아시아 지역을 다니며 유엔을 위해 일했으며, 1988년부터 2000년까지 캐나다 국군과 함께 복무했다. 『민간 군사 협력의 정치(Civil Military Cooperation)』와 『국제학의 미래(The Future of Global Affairs)』를 포함한 여러 권의 책 저자이자 편집자인 그는 런던정치경제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마이크 마틴(Mike Martin)은 영국 육군 장교 출신으로 아프간에서 정치 장교로 복무하며 영국 장군들을 대상으로 전쟁 전략에 대해 조언했다. 현재 킹스칼리지런던 연구원이며, 1978년 이후 아프간 남부 전쟁을 그린 『친밀한 전쟁(An Intimate War)』’의 저자이다. 킹스칼리지런던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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