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화혈색소 바이오마커, 당뇨합병증 예방한다

적혈구 크기의 미세 유체 기술을 활용해 당화혈색소 측정 기기를 개발한 오렌지바이오메드. 박예슬, 고웅현 대표를 만나 당뇨 환자의 현황과 미세 유체 기술의 혁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초기 증상이 없는 당뇨는 감기처럼 가볍게 치부되지만, 질환의 심각성은 결코 가볍지 않다. 당뇨 환자는 혈액 속 포도당의 양을 일정하게 유지시키는 인슐린(혈당 수치를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되는 호르몬)의 생산과 활동이 떨어지기 때문에 제때 관리하지 않으면 당뇨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 당뇨 환자의 적혈구 내 혈색소에 당 성분이 많이 결합하면 당화혈색소 수치가 높아지는데 이때 적혈구의 강성이 커지고 혈액의 점성이 증가한다. 환자는 식습관, 운동 등을 병행한 치료를 지속해야 하고 건강관리를 위해 체온과 몸무게를 재듯 혈당과 당화혈색소 수치를 확인해야 한다. 특히 당화혈색소는 당뇨합병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많은 연구결과에서 보여주고 있다. 최근 가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당화혈색소 측정기를 개발한 오렌지바이오메드의 두 공동창업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당화혈색소는 혈당과 함께 당뇨 환자라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수치로 알고 있습니다. (정상 5.6% 이하, 당뇨 6.5% 이상) 오렌지바이오메드가 첫 시작을 당화혈색소 연구로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저희는 먼저 당뇨 환자에 주목했습니다. 미국만 해도 인구의 11%가 당뇨를 가지고 있고 33%가 예비 당뇨이기 때문에 사실 40% 이상 당뇨 위험이 있거나 당뇨 고위험군이에요. 우리나라도 2020년 기준, 당뇨 환자가 600만 명, 고위험군이 1,500만 명 이상이라고 해요. 저희가 아이디어 검증을 위해 사람들을 만나면 본인이 당뇨이거나 가족 중에 당뇨인 사람들이 대부분이더라고요. 당뇨병은 초기 증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심각해질 때까지 병원을 찾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웅현 대표와 저는 듀크대학교에서 만났기 때문에 미국 남부의 당뇨 환자를 만나볼 기회가 많았는데 증세가 심각한 사람이 매우 많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습니다. 그들은 합병증에 대한 불안함을 늘 가지고 살고 있어요. 당화혈색소는 당뇨합병증을 예방할 수 있는 좋은 척도예요. 실제로 당화혈색소 수치를 1%만 줄여도 사망률 21%, 심혈관 질환 발병률 14%, 말초혈관 질환 발병률 37%, 망막병증 발병률 19%를 줄이는 등 각종 합병증 발병률을 크게 낮출 수 있다고 합니다.

박 대표가 말한 것처럼 당화혈색소 수치와 당뇨합병증의 연관 관계는 당뇨병 조절 및 합병증 연구(Diabetes Control and Complications Trial, 이하 DCCT)를 통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환자들이 많이 측정하고 있는 혈당 수치에서는 이와 같은 강한 연관성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또한 당화혈색소는 국제 당화혈색소 측정 표준화프로그램(National Glycohemoglobin Standardization Program, 이하 NGSP)을 통해 측정 방법이 잘 표준화되어서 정확한 기준이 넘으면 당뇨병이라고 진단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당뇨 학계에서도 당화혈색소를 중요한 바이오마커로 인정하고 있으며 미국 당뇨 학회 (American Diabetes Association, 이하 ADA) 메인 웹사이트를 통해 당화혈색소가 당뇨병 관리의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Q. 기존 당화혈색소 측정은 병원에서 면역검사법과 크로마토그래피 방법을 주로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오렌지바이오메드의 당화혈색소 측정 기기인 ‘OBM Rapid A1c’가 기존의 방법과 차별되는 점은 무엇인가요?

작년 1월에 시제품이 나왔는데 저희가 개발한 기기는 기존의 두 가지 방법과 달리 휴대용이면서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환자의 바이오마커를 측정하는 것이 의료 기기의 접근성을 높이는 길이기도 하잖아요. ‘OBM rapid A1c’는 큰 병원에서 쓰는 HPLC 장비의 1/500 가격으로 비슷한 수준의 정확도를 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병원이 아닌 곳에서 의료진이 아닌 보호자나 환자가 이용해도 정확도에 영향을 주지 않죠.

크로마토그래피는 HPLC(high performance liquid chromatography, 고성능 액체 크로마토그래피)라고 하는데 큰 대학병원에서만 가지고 있는 1억을 호가하는 장비에요. 혈액 내 혈색소를 종류별로 분리(단백질을 정제)해서 그 중 당화혈색소라는 단백질이 기존 혈색소 대비 얼마나 있는지 측정하는 원리입니다. 단백질이 정확하게 얼마나 들어있는가를 판단하기 때문에 기술 난이도가 굉장히 높은 편이에요. 이 기기를 대체하기 위해 동네 병원에서는 500만 원 대의 벤치탑디바이스(bench-top device, 테이블에 올려놓고 쓸 수 있는 소형 기기)를 쓰는데 정확도는 조금 떨어질 수 있지만, 그 자리에서 바로 결과를 알 수 있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면역검사법은 당화혈색소에 결합하는 항체를 이용해서 항원항체 반응을 보이면 여러 표지자를 이용해 측정하고요. 앞서 언급한 기기는 유지 보수가 까다로워서 환자들이 집에서 사용하기는 힘듭니다.

오렌지바이오메드의 당화혈색소 측정기 ‘rapid A1c’
Q. 당화혈색소 측정기는 수치의 오차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죠. 미세 유체 기술은 항체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고 수치의 정확도를 유지한다고 하셨는데요. ‘OBM Rapid A1c’에 적용한 미세 유체 기술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제가 주로 연구한 분야는 세포역학(cell mechanic) 혹은 메카노바이올로지(mechanobiology) 입니다. 이 분야는 세포를 늘려 보고 당겨도 보면서 세포가 얼마나 단단한지, 얼마나 점성이 있는지를 측정하는 연구를 합니다. 그래서 남들과 다른 관점으로 적혈구의 강성을 이용해 당화혈색소를 측정한다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적혈구는 아주 작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다루기 어렵습니다. 각각의 적혈구 강성을 측정하는 기술은 굉장히 노동집약적이고 오차범위도 크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런 연유로 한 번에 많은 수의 적혈구 강성을 측정하여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얻기가 힘들었죠. 이에 미세 유체 기술을 통해 한 번에 많은 양의 세포를 컨트롤 하고 강성을 측정 및 비교할 수 있게 해주는 시스템을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시스템은 적혈구보다 작은 미세 유체 시스템을 이용해 적혈구의 통과 시간을 계측, 강성 정도를 추정하고 이를 통해 당화혈색소 수치를 계산해 냅니다. 적혈구의 강성을 이용해 직접 당화혈색소 수치를 계산하는 기술은 세계에서 저희가 유일합니다.

혈색소는 원래 말랑말랑한 상태인데 당화가 되면 혈색소가 들어있는 적혈구가 딱딱해집니다. 말랑말랑한 상태에서는 혈관을 잘 통과하지만 딱딱해지면 혈관을 제대로 통과하지 못해서 모세혈관을 막거나 손상을 입히게 돼요. 그게 당뇨합병증이 됩니다. 기존의 기기는 혈색소의 강성이 아닌 농도를 재는 거라서 부피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피를 얼마큼 뽑느냐에 따라 농도가 달라지죠. 혈액은 보통 1~3마이크로리터(microliter, μL: 1리터의 백만분의 1)가량 측정하는데 실수로 5마이크로리터를 측정하게 되면 그만큼의 오차가 생겨버립니다. 그만큼 정확한 부피로 측정해야 해요. 그리고 당화혈색소를 측정할 때 항체가 표적으로 하는 것만 걸러내야 하는데 비슷한 단백질이 붙는 간섭 현상도 있어요. 비슷하게 생긴 것들을 다 같이 걸러내다 보니 정확한 농도가 안 나오죠. 아무래도 POC(point of care, 현장 진료) 장비가 될수록 간섭 효과 때문에 정확도가 떨어집니다. 저희 ‘OBM Rapid A1c’는 단백질을 전혀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농도나 채혈 양에 영향을 받지 않고 단백질을 타깃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간섭 효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Rapid A1c’의 미세 유체 시스템

Q. 해외에서는 병원용 POC 장비에 스마트폰 앱 기능을 넣은 제품을 출시했습니다. 다양한 기능을 넣어 당화혈색소와 관련된 정보를 추가로 제공하고 있는데요. 오렌지바이오메드는 코어 기능에 집중하고 다른 기능은 다 제거했다고 들었습니다. 코어에만 집중한 의도가 있습니까?

저희도 고민한 부분입니다. 기획 당시 여러 가지 기능을 넣을 수 있었어요. 그렇게 되면 사용성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죠. 당화혈색소를 측정하는 연령대가 높고 가정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게 하려면 최대한 간단하게 만드는 게 답이었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전원 버튼만 넣고 해결할 수 있게 디자인했습니다. 다른 버튼이 없어서 사용자가 기기를 어떻게 쓰는 건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요. 전원을 켜면 카트리지를 꽂을 수 있는 슬롯이 나오고 거기에 카트리지를 꽂은 뒤 채혈한 것을 희석해서 넣으면 됩니다. 이 방법은 코로나 키트 방식을 차용했어요. 사람들이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자가진단 키트에 많이 노출되었고 한 번씩 경험이 있으니까 비슷하게 만들면 쉽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죠. 물론 기존에 쓰던 혈당 측정기와도 비슷하게 만들었어요. 혈당 측정기도 기기에 스트립을 꽂고 혈액을 묻혀서 측정합니다.

Q. 오렌지바이오메드의 당화혈색소 측정 기기는 개인이 사용하기에 좋은 제품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비싼 기기를 들이지 못하는 작은 병원이나 의료 환경이 부족한 나라의 보건소 같은 곳에서도 유용할 것 같은데요. 오렌지바이오메드가 생각하는 제품의 타깃은 누구입니까?

네, 환자와 중소형 의료기관, 보건소 등을 다 저희 타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뇨는 가족력이 있는 질환이기 때문에 가족 중에 당뇨를 앓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구성원 모두 주기적인 체크를 해줘야 합니다. 만약 가정용으로 구비하면 가족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거죠. 저희는 접근성을 높여 조기 발견하고 조기 예방해서 심각한 합병증으로 발전하기 전에 치료하도록 돕는 것이 목표입니다. 미국 통계에 의하면 병원으로부터 접근성이 안 좋은 지역에 사는 사람일수록 당화혈색소 관리가 힘들어서 합병증 위험이 높다는 결과를 보였습니다. 미국 전체 의료비의 1/4이 당뇨와 관련된 것일 만큼 의료비 부담이 크고 그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에 있을 때 채혈해서 우편으로 보내면 결과를 알려주는 서비스가 있어서 해보려고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접근성이 안 좋다 보니 집에서 하고자 하는 니즈가 만든 서비스죠. 그런데 채혈해야 하는 양이 300마이크로리터, 저희가 필요로 하는 3마이크로리터의 100배더라고요. 이 정도면 한 방울이 아니라 피를 흘리는 수준이어서 결국 못했습니다. 그만큼 미국에서는 집에서 관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우편을 이용한 서비스는 법적인 제한이 있습니다. 사람의 혈액을 운반하는 것이다 보니 몇몇 지역에서는 우편으로 혈액을 보내는 것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정작 병원 접근성이 떨어져 서비스가 필요한 다수의 당뇨 환자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미국 시장을 먼저 타깃으로 잡은 것도 의료 시스템 때문입니다. 당뇨 인구가 1억 3천 3백만 명인데 의료 접근성이 많이 떨어집니다. 우리나라는 마음만 먹으면 병원 가서 검사하는 데 1만 원 안쪽이면 가능합니다. 미국은 보험이 없으면 200불이 들어요. 왔다 갔다 하기도 힘들고요. 의료 비용 부담과 접근성의 문제가 심각해서 먼저 타깃으로 정했습니다. 미국이나 한국뿐만 아니라 의료 기기가 보급되기 힘든 국가에도 보급할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앞서 설명했지만, 저희는 단백질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변형이나 유통기한에 제한받지 않지 않습니다. 건전지만 있으면 측정이 가능하고 유지보수가 필요 없어요. 날이 더운 국가의 보급에 용이합니다. 슬롯에 끼우는 키트는 여러 개 사서 보관해도 되고 백신처럼 콜드 체인으로 유통해야 하는 번거로움 없이 택배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Q. 오렌지바이오메드의 미세 유체 기술을 이용한 향후 개발 계획이 있나요? 오렌지바이오메드의 향후 일정이 궁금합니다.

미세 유체 기술을 가지고 추후 어떤 연구를 할지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희 기술은 단순히 적혈구의 강성을 재는 것뿐만 아니라 혈액 내 세포의 종류도 구분할 수 있습니다. 현재 일반 혈액 검사(complete blood count, 이하 CBC)를 간단하게 혈액 한 방울로 할 수 있는 CBC 테스트 검진 기기로 발전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하고요. 또 세포의 강성을 측정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혈액 내에 떠돌고 있는 순환암세포(circulating tumor cell, 이하 CTC)를 검출하는 기기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미세 유체 기술은 미세관이다 보니 표면적이 굉장히 넓습니다. 모세혈관을 모사한 정도의 표면적을 가지고 있거든요. 이런 넓은 표면적을 이용해서 혈액 내 불순물을 걸러주는 기기, 가령 신장을 모사해서 병원이나 가정에서 빠르게 혈액을 투석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미세 유체관 신장 투석기(POC 장비)도 미래 아이템으로 고려하고 있습니다.

저희 기기로 현재 아산병원에서 2차 임상 시험 중입니다. 아산병원의 HPLC 장비에서 얻은 데이터값과 ‘OBM Rapid A1c’에서 얻은 데이터값을 비교 분석해 데이터를 누적하고 있죠. 데이터가 누적될수록 정확한 진단이 가능해집니다. 병원 측에서 많은 도움을 줘서 개발과 임상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오렌지바이오메드의 비전은 세상을 이롭게 하는 기술력으로 환자 일상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만성질환은 꾸준한 관리를 해야 하는데 사실 정말 어렵습니다. 음식,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일상에 방해가 되고요. 3개월마다 측정해야 하는 당화혈색소의 경우, 병원을 한 번 다녀오려면 미리 스케줄을 조정하는 등 업무나 학에 지장을 줄 수밖에 없거든요. 저희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게끔 도와주고 싶어요. 목표는 단기적으로 미국에서 임상 연구를 진행하고 증명할 수 있는 데이터를 가지고 미국 FDA 승인을 받는 것이고요. 장기적으로는 고 대표가 말한 기기들을 개발해서 더 많은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박수연 에디터(pksyn@technologyrevie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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