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px

KAIST, 뇌세포 ‘RNA 택배’ 원리 밝혀…뇌질환 ‘배송 오류’ 새 관점

택배가 주소를 보고 찾아가듯, 신경세포도 필요한 RNA를 정확한 곳까지 보낸다. 그 '배송 표지'와 운반 원리를 밝혀냈다.

신경세포가 수많은 RNA 가운데 필요한 것을 골라 멀리 떨어진 세포 끝까지 정확히 보내는 ‘배송’ 원리가 규명됐다.

KAIST는 생명과학과 윤기준 교수 연구팀이 RNA에 붙는 화학적 표지인 ‘m6A(엠식스에이)’가 특정 RNA를 신경세포의 긴 전선 같은 축삭(axon) 끝까지 운반하는 데 관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14일 밝혔다. 그동안 생명과학에서는 RNA가 제대로 ‘만들어지고 유지되는지’에 주로 주목해 왔다. 하지만 나뭇가지처럼 길게 뻗은 신경세포에서는, 세포 중심에서 만든 RNA가 정작 필요한 곳은 멀리 떨어진 끝일 수 있다.

택배 물건이 만들어졌다고 끝이 아니라 정확한 주소로 배달돼야 하듯, RNA도 제때 제 위치에 도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번 연구는 그 ‘배송’이 어긋나는 것도 뇌질환과 관련될 수 있다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RNA도 ‘제 주소’로 배송돼야 한다

신경세포는 다른 세포와 생김새부터 다르다. 나뭇가지처럼 길게 뻗어 있는데, 다른 신경세포로 신호를 보내는 긴 통로를 ‘축삭’, 신호를 받아들이는 가지를 ‘수상돌기’라 한다. 뇌가 정상적으로 발달하고 작동하려면 이 구조들이 제대로 자라고 서로 연결돼야 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신경세포의 ‘길이’다. 유전정보를 실어 나르는 RNA는 세포 중심에서 만들어지지만, 실제로 그 RNA가 필요한 곳은 멀리 떨어진 신경세포의 끝일 수 있다. 따라서 수많은 RNA 가운데 필요한 것을 골라 정확한 위치까지 보내는 과정이 세포의 성장과 기능에 결정적이다. 그러나 신경세포가 어떤 RNA를 어떻게 먼 곳까지 보내는지는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그 열쇠가 RNA에 붙는 작은 화학적 표지 ‘m6A’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m6A는 RNA를 이루는 염기에 붙는 화학적 변형으로, 그동안은 주로 RNA의 안정성이나 수명, 분해를 조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번 연구는 여기에 ‘배송 표지’라는 전혀 새로운 역할을 더했다. 특정 RNA가 필요한 곳으로 이동하도록 안내하는 꼬리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연구팀은 RNA에 m6A 표지를 붙여주는 ‘메틸화 효소’가 작동하지 않는 실험용 생쥐를 분석했다. 쉽게 말해 RNA에 배송 표지가 제대로 붙지 않도록 한 것이다. 그 결과 신경세포에서 길게 뻗어 나가는 신경돌기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 배송 표지가 없으면 세포가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는 것으로, m6A가 신경세포의 초기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연구 개요 및 의의 | AI 생성

표지 붙이고, 알아보고, 실어 나른다

연구팀은 어떤 RNA에 이 표지가 붙는지를 정밀하게 확인했다. ‘엠식스에이-삭-시퀀싱(m6A-SAC-seq)’이라는 분석 기술을 이용해, 생쥐 뇌의 수많은 RNA 가운데 어느 RNA의 어느 위치에 m6A가 붙어 있는지를 RNA를 이루는 한 글자(염기) 단위까지 확인할 수 있는 고해상도 지도를 만든 것이다. 이를 통해 축삭 성장에 필요한 특정 RNA에도 m6A가 다량 붙어 있음을 확인했다.

핵심은 이 표지를 ‘알아보고 실어 나르는’ 과정을 밝혀낸 데 있다. 연구팀은 ‘YTHDF2’라는 단백질이 m6A가 붙은 RNA를 알아보고, ‘FMRP’와 ‘KIF5C’라는 다른 단백질들과 함께 RNA를 신경세포 끝까지 옮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택배에 비유하면 m6A는 RNA에 붙은 배송 표지, YTHDF2는 그 표지를 알아보는 역할, FMRP와 KIF5C는 목적지까지 실어 나르는 ‘운반 시스템’인 셈이다. 특히 KIF5C는 세포 안의 도로 역할을 하는 미세소관을 따라 움직이는 운동 단백질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YTHDF2의 새로운 역할이다. 이 단백질은 그동안 주로 필요 없어진 RNA를 분해하는 데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이번 연구를 통해 RNA를 분해할 뿐 아니라, 필요한 RNA를 제 위치로 이동시키는 데도 관여한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하나의 단백질이 ‘폐기’와 ‘배송’이라는 상반된 일을 함께 맡고 있었던 셈이다.

이번 연구는 뇌질환을 바라보는 관점도 바꿔놓는다. 지금까지는 RNA가 제대로 만들어지고 유지되는지가 중요했다면, 앞으로는 정상적으로 만들어진 RNA가 필요한 위치까지 제대로 전달되는지도 살펴볼 수 있게 됐다. 즉 RNA 자체에는 문제가 없어도 ‘배송 표지’나 운반 과정에 이상이 생겨 필요한 곳에 도착하지 못하는 ‘배송 오류’가 신경발달질환이나 퇴행성 뇌질환과 관련되는지 연구할 길이 열린 것이다. 다만 연구팀은 이번 연구가 주로 발달 중인 신경세포를 대상으로 한 기초연구 단계로, 실제 치료로 이어지려면 인간 세포에서의 검증과 특정 RNA의 수송만 정밀하게 조절하는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윤기준 교수는 “RNA에 붙는 작은 화학적 표지가 RNA의 수명만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RNA가 신경세포 안에서 제 위치로 이동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혔다”며 “향후 뇌질환에서 RNA가 필요한 곳까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원인을 이해하고 새로운 치료 가능성을 연구하는 데 기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