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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를 죽이지 않고 유전자 활동 변화를 추적하는 기술 개발

이 새로운 기술은 세포가 스스로 RNA를 포장해 밖으로 내보내며, 연구자는 세포를 죽이지 않고도 이를 시퀀싱하고 분석할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과학자들은 세포의 전사체(transcriptome), 즉 세포가 만들어내는 모든 RNA를 측정해 세포의 정체성과 유전적 활동을 연구하는 방법을 개발해왔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세포 안의 RNA에 접근하기 위해 세포를 죽여야 했고, 한 번의 스냅샷(snapshot)만 제공할 수 있었다.

이번에 브로드 연구소(Broad Institute)와 MIT 연구진이 개발한 살아있는 세포가 스스로 자신의 전사체(transcriptome)를 정보를 세포 밖으로 내보내게 만드는 ‘세포 자가 보고’ 기술은, 세포를 죽이지 않고도 이를 분석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생명과학 학술지 <셀(Cell)>에 발표된 이 살아있는 세포 전사체 분석법은 바이러스 유사 입자를 이용한다. 세포는 이 입자를 통해 RNA를 포장해 자신이 담긴 배양액(medium)으로 내보낸다. 연구자는 이 배양액을 채취해 RNA를 분리하기만 하면 되고, 이를 반복하면 동일한 세포 집단의 유전자 활동이 세포가 성숙하거나 교란에 반응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변하는지 알 수 있다. 연구팀은 이 기법을 다양한 세포 모델 시스템에 적용해, 질병 과정에서 세포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이상을 일으키는지, 약물이 세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밝히는 데 이 기법이 쓰일 수 있음을 보여줬다.

연구 책임 저자이자 브로드 연구소 핵심 멤버이며 MIT 생물공학과 교수인 폴 블레이니(Paul Blainey)는 “우리 연구실은 실제로 널리 쓰이고 해당 분야 전체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도구를 개발하는 데 시간과 자원을 집중한다”며 “이 기술을 처음 연구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완전히 공상과학 같은 이야기였다. 장기적인 고위험·고보상 연구가 얼마나 혁신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세포가 보내는 특별 배송

이 새로운 기법을 개발하려는 노력은 10여 년 전, 블레이니 연구팀이 세포를 죽이지 않고 RNA 염기서열을 분석할 새로운 방법을 찾아 나서면서 시작됐다. 블레이니는 “기존 방법들은 다소 원시적이어서, 세포를 찌르거나 일부를 잘라내는 식이었다”고 회고했다. CRISPR 기반 기술 같은 분자 기술은 성능이 뛰어나면서도 다른 연구실에서 쉽게 도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 점에 착안해 블레이니 연구팀은 제1저자인 제이컵 보라호(Jacob Borrajo)의 주도로 분자 수준의 방법을 개발하기로 했다. 이들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려운 도전이 될 것임을 알았지만, 동시에 다른 연구실에서도 손쉽게 적용할 수 있는 확장성 있는 방법이 될 것이라 판단했다.

연구팀은 레트로바이러스(retrovirus)에서 영감을 얻었다. 레트로바이러스는 수백만 년에 걸쳐 자신의 RNA 유전체를 단백질 껍질로 감싸 감염된 세포에서 다른 세포로 옮겨 다니는 능력을 진화시킨 바이러스다. 연구팀은 이 원리를 이용해 포유류 세포가 바이러스성 RNA뿐 아니라 세포 자신의 RNA까지 감쌀 수 있는 레트로바이러스 구조 단백질을 발현하도록 유전자를 조작했다. 세포막에 통합된 이 바이러스 단백질은 세포 내 RNA를 끌어모아 그 주위에 껍질을 형성해 바이러스 유사 입자를 만들고, 세포막에서 떨어져 나와 세포를 둘러싼 액체 배양액 속으로 들어간다. 이후 연구자들은 배양액을 채취해 RNA를 분리하고 시퀀싱함으로써, 세포를 파괴하거나 손상시키지 않고도 해당 세포 집단의 전사체를 들여다볼 수 있다.

공동 제1저자이자 블레이니 연구실 및 보스턴 아동병원(Boston Children’s Hospital) 조지 데일리(George Daley) 연구실의 연구원인 모하마드 나지아(Mohamad Najia)는 “로봇이나 세포의 기계적 생검을 이용하는 방법과 비교하면, 이번에 개발된 분자 기반 해법은 일반적인 생명과학·생의학 연구실에 훨씬 폭넓게 적용될 수 있다. 특히 이 기술은 시간에 따라 역동적 변화를 연구하는 데 유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지아와 보라호는 블레이니 연구실 박사후연구원인 공동 제1저자 애나 리(Anna Le)와 함께 이 연구를 이끌었다.

병 속에 담긴 편지

연구팀은 이 기법의 적용 범위를 폭넓게 검증했다. 정상 세포와 달리 계속 분열하도록 만든 이른바 ‘불멸화’ 인간세포를 비롯해 암세포주, 줄기세포와 이로부터 분화시킨 신경세포, 인간 기증자의 1차 세포까지 모두 이 기법이 작동함을 확인했다. 또한 두 가지 인간 세포 유형을 함께 배양한 실험도 진행했는데, 바이러스 유사 입자에 태그를 붙여 분석 과정에서 두 세포 유형의 신호를 구분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함께, 세포 자가 보고 기법은 구조를 흐트러뜨리고 싶지 않은 중요한 3차원 구조를 지닌 시스템을 연구하는 데도 유용하다. 연구팀은 인간 내피세포(endothelial cell)로 이뤄진 스페로이드(spheroid), 즉 세포들이 뭉쳐 만든 둥근 입체 세포 덩어리에 이 기법을 적용해, 생화학적 자극을 가한 뒤 나타나는 단기 전사 변화를 포착했다.

연구팀은 또한 MIT 생물공학·기계공학과 교수 린다 그리피스(Linda Griffith)와 협력해, 그의 연구실이 개발한 장기 칩(organ-on-a-chip) 장치에 이 기법을 적용했다. 이런 장치는 장기의 생리 기능을 모사해 전임상 시험이나 동물 실험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구조가 복잡해 분석을 위해 장치에서 세포를 꺼내기가 어렵다. 연구팀은 세포 자가 보고 기법을 이용해 장치 안 내피세포의 유전자 발현 변화를 시간에 따라 관찰했고, 그 결과 조직이 혈관망을 형성하는 방식과 관련된 유전자 변화가 함께 배양된 섬유아세포(fibroblast)의 출처, 즉 자궁 유래인지 폐 유래인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브로드 연구팀은 계속해서 이 시스템으로 답할 수 있는 새로운 응용 분야와 생물학적 질문을 찾고 있으며, 이 접근법을 단일 세포 연구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연구팀은 우선 세포와 조직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 추적하는 데 관심 있는 과학자들이 이 기법을 직접 시도해보길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