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mart city is a perpetually unrealized utopia

스마트시티는 영원히 실현되지 않을 유토피아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고. 시민들을 보호하고,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 도시에 여러 가지 기술이 도입됐다. 그런데 과연 이 목적은 제대로 달성되었을까?

1959년 〈앞으로 다가올 위대한 게임(The Great Game to Come)〉이라는 제목의 짧은 수필 한 편이 발표되었다. 저자는 네덜란드 출신의 시각 예술가 콘스탄트 니우웬하이스(Constant Nieuwenhuys)로 당시 무명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이 글에서 그는 훗날 ‘뉴 바빌론(New Babylon)’이라고 불리게 될 새로운 유토피아를 묘사했다. 그는 “오늘날 인류가 향유하는 기술 발명이 미래의 도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일찍이 내다보았다.

대부분의 상상 속 유토피아가 그렇듯 뉴 바빌론은 실현되지 못했다. 우리는 이를 건축 도면, 스케치, 지도, 콜라주, 실험영화 속에서 볼 수 있을 뿐이다. 창작자인 콘스탄트가 상상한 도시는 인공과 자연 공간이 통신 인프라에 의해 서로 연결된, 복잡다단한 네트워크였다. 이 도시의 복잡성은 ‘컴퓨터에 의해’ 해결될 것이었다. 이 도시가 더욱 급진적이었던 점은, 완전 자동화와 같은 신기술을 통해서 사람들을 고된 노동으로부터 해방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결국 뉴 바빌론은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시민들이 ‘창조적인 놀이를 유랑’하며 살아가는 곳이 될 예정이었다.

오늘날 콘스탄트의 선언은 미래를 예측한 것처럼 보인다. 그가 구상했던 대로 ‘각자 언제 어디서든 음량, 밝기, 향취, 온도를 조절하여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의심의 여지 없이 컴퓨터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뉴 바빌론에서 전자기술을 이용하면 한 공간의 소리, 빛, 구조를 완전히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전환은 콘스탄트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정교한 자동화’라고 부른 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며, 전자장치 자체는 ‘눈에 보이는 환경의 일부’가 될 것이다. 뉴 바빌론의 공간들은 그 안에서 일어나는 활동을 스스로 ‘인식’함으로써, 공간의 환경과 분위기를 적절하게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콘스탄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상황주의 인터내셔널(Situationist International, SI)(1957–1972)란 조직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 조직은 마르크스주의를 현대 도시 사회에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 예술가, 작가, 철학자들의 모임이었다. 많은 SI 동료들처럼 콘스탄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도시에 대해 많은 비평과 권고 사항을 제시하였다. 그는 상황주의 문화평론가 가이 데보드(Guy Debord)와 함께 그들이 ‘통합적 도시주의(Unitary Urbanism)’라고 명명한 개념을 제시하였는데, 그들은 도시를 정체불명의 건축과 관료적 절차의 응집물이 아닌, 창조적인 사회 활동의 집합으로 여겼다.

뉴 바빌론은 콘스탄트가 SI의 일원이었던 2년 동안 구체화되었다. 그것은 건축 계획 프로젝트라기보다는 ‘사물과 삶을 사유하고 상상하며 바라보는 방식’이었다. 아키그램(Archigram)의 ‘걷는 도시(Walking City)’나 오스트리아의 아방가르드 집단 쿱 힘멜블라우(Coop Himmelb(l)au)의 ‘빌라 로사 공기압력 주택(Villa Rosa–Pneumatic Living Unit)’처럼 기술을 접목한 1960년대 유토피아적 도시 미래상들이 퍼져나갔음에도 뉴 바빌론 아이디어는 교외 지역과 같은 환경을 대상으로 구상되었다. 1959년 콘스탄트는 이탈리아 피에몬테 산자락에 위치한 도시 알바(Alba)에서 열린 실험적-도시주의(experimental-urbanism) 워크숍에 참여했다. 그는 타나로 강가에서 야영하는 집시들이 있다는 사실에 영감을 받아 ‘이동 가능한 장비를 동원하여 한 지붕 아래 지속적으로 리모델링할 수 있는 공유 주거 공간’으로써 이주민들을 위한 ‘영구적인 야영지(permanent encampment)’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콘스탄트는 20년의 세월 동안 뉴 바빌론을 마음속에 품었다. 그는 토지가 집단소유화되고, 사회시스템이 초연결되며, 자동화가 시민에게 여가를 안겨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새로운 ‘도시의 사회적 조직’을 이루기 위해 콘스탄트는 전 세계적으로 연결된(그에 따르면 ‘네트워크’) 장소들(‘구역’)의 거대한 위계질서를 상상했다. 그는 거주민들(‘뉴 바빌로니안’)과 그들 주변의 환경 사이에 역동적인 관계가 형성될 수 있도록, 서로 연결된 플랫폼들의 집합을 얼마든지 변형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했다.

뉴 바빌론은 모든 곳이 촘촘하게 상호 연결된 통신망과 교통망을 통해 기존의 지형적인 한계를 극복한다. 그러나 콘스탄트는 이러한 복잡하고 상호 연결된 시스템을 운영하기 위해서 컴퓨터 관리 및 제어라는 새로운 기술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비록 그는 뉴 바빌론을 건설할 능력도, 실제로 그렇게 하려는 계획도 없었지만, 그의 발상은 언젠가 실현될 아이디어 같았다.

스마트시티의 부상

콘스탄트가 뉴 바빌론 연구를 중단한 1974년에는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미국 로스앤젤레스 커뮤니티 분석국(Community Analysis Bureau, CAB)에서는 도시의 상태: 로스앤젤레스의 클러스터 분석(The State of the City: A Cluster Analysis of Los Angeles)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는 도시 연구의 전형대로 통계 분석, 인구 통계 데이터, 주택 평가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다만 CAB가 어떻게 데이터를 수집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스마트시티’ 개념의 역사를 추적할 때, 도시이론가들은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IBM이 이 용어를 처음 만들었던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이는 다소 근시안적인 접근이다. 1974년 CAB의 연구는 ‘빅데이터’를 통해 도시 환경을 모델링한 최초의 대규모 기획이었다. 전산화된 데이터 수집 및 저장, 통계 클러스터 분석 기법, 항공 기반의 컬러 적외선 사진(오늘날의 인공위성 원격탐사), 항공 이미지 ‘현장’(예를 들어 도시를 차로 주행하는 등) 검증과 같은 기법들을 조합하여 활용한 CAB의 분석은 이전과 확연히 달랐다. CAB는 마치 오늘날 기업의 소셜미디어 전략집에 나와 있는 것처럼, 도시를 ‘LA 독신’, ‘도시 빈민’, ‘1950년대 스타일 교외’와 같은 식의 사회·지리적 특징을 나타내는 여러 클러스터로 나누었다. 그들은 클러스터 분석을 통해 사회경제적 지표가 향후 이 지역이 빈곤이나 ‘도시 황폐화’에 빠질 확률을 예측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CAB가 전산 및 컴퓨터 기반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한 것은 당시로서 혁신적인 일이었지만, 그들이 단순히 이 작업만 진행한 것은 아니었다. 이 작업은 전산화를 통해 도시를 혁신하고자 하는, 세계 대전 후 시도된 원대한 도시 재구조화 실험의 일환이었다. 도시이론가 케빈 린치(Kevin Lynch)의 1960년 작 《도시환경디자인(Image of the City)》은 우리가 도시 공간의 유형학적(typological)인 요소(길, 경계, 점, 구역, 랜드마크)를 어떻게 인식(map)하는지에 대한 인지과학적 연구를 촉발하였다. MIT의 제이 포레스터(Jay Forrester)와 같은 인공두뇌학자들은 복잡계 역학을 기반으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수행함으로써 인구, 주택 및 산업 성장을 포함한 도시 발전 과정을 이해하고자 노력하였다. 감지 기술(sensing)과 컴퓨팅이 대중화되는 것과 동시에 포레스터, 린치 등의 노력으로 스마트시티의 토대가 마련되고 있었다.

센서로 가득 찬 전쟁터와 기계화된 도시에는 공통적으로 ‘사람’이 결여되어 있다.

스마트시티의 현대적 비전은 이제 잘 알려져 있다. IBM에 따르면, 그것은 ‘기기장치(instrumentation), 상호 연결(interconnectedness), 지능(intelligence)’적인 것이다. 여기서 ‘기기장치’란 감지 기술을 의미하며, ‘상호 연결’은 센서 데이터를 통합하여 하나의 계산 플랫폼에 입력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러한 정보를 다양한 도시 서비스에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스마트시티의 한계는 스마트시티가 얼마나 고도의 지능을 갖추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한편 더 중요한 문제는 ‘복잡한 분석, 모델링, 최적화, 시각화 서비스 및 그리고 인공지능’으로 구성된 도시 네트워크 안에서 과연 사람의 역할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실제로 IBM은 2011년 11월에 ‘더 스마트한 도시(smarter cities)’라는 용어를 상표 등록했는데, 이로 인해 사람들은 ‘스마트’한 도시의 소유권이 거주자들에게 있지 않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시 센서 네트워크와 이를 통해 생산되는 데이터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콘스탄트가 처음에 구상했던 것과 비교하여 어떠한 점이 유사하고 또 어떤 점이 다른지 생각해보는 것은 굉장히 흥미로운 작업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콘스탄트의 뉴 바빌론 구상에는 수익 증가에 대한 계획이 포함되어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반면에 IBM의 것과 같은 현대의 스마트시티 구상에는 주차, 쇼핑, 건강 관리에서부터 기반 시설 모니터링에 이르기까지 대규모의 데이터를 통해 이윤을 창출하겠다는 의도가 명확히 드러난다. 뉴 바빌론은 의심의 여지 없이 반자본주의적인 구상이었다. 이는 보편적이고 잘 알려진 기술을 통해 우리가 언젠가 고통스러운 노동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 기반한 상상이었다.

전쟁과 센서

2022년 2월부터 우크라이나의 마리우폴, 하르키우, 이지움, 헤르손, 키이우에서 전해진 처참한 뉴스는 IBM의 스마트시티 구상과는 영 관련이 없어 보인다. 유도 기능조차 없는 ‘멍청한 폭탄’이 우크라이나의 도심에 쏟아지는 광경 속에서, 스마트센서와 머신러닝 알고리즘은 그저 무력할 뿐이다. 하지만 이 연기에 휩싸인 도시의 끔찍한 이미지가 우리에게 상기시켜주는 것은, 이러한 센서 네트워크와 시스템도 전쟁 과정 중에 개발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콘스탄트는 몰랐지만, 그가 구상하던 새롭고 행복한 도시를 가능하게 해 줄 바로 그 ‘기본’ 기술은 실제로 그가 도시를 구상하던 바로 그 시기에 발전하고 있었다. 냉전 시기에 미 국방부에서 시작한 이 연구는 베트남전 기간 중 특히 많은 발전을 이룩했는데, 이 연구의 목적은 베트남의 남북을 관통하는 일명 ‘호찌민 루트’라고 불리는 경로를 통한 북베트남군의 보급을 막는 것이었다. 베트남 전 기간 동안 미 육군은 윌리엄 웨스트모어랜드(William Westmoreland) 장군의 구상에 따라 이 경로에 약 2만 개의 배터리 구동 무선 음향 센서를 설치하였다. 이를 통해 그들은 ‘이 길을 거의 24시간 동안 실시간으로 감시’하고자 했다. 나중에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efenc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DARPA)이 ‘네트워크 중심전(network-centric warfare)’이라고 명명하게 된 이 사건은, 사실 수십억 달러(수조 원)를 들여 MIT와 카네기멜론 대학(Carnegie Mellon)에서 개발한 기술을 활용한 것이었다. 이러한 분산형 무선 센서네트워크 기술은 현재 군대의 가장 발전된 기술로서 무기를 ‘더욱 치명적’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MAXAR TECHNOLOGIES
유도 기능조차 없는 ‘멍청한 폭탄’이 우크라이나의 도심에 쏟아지는 광경 속에서, 스마트센서와 머신러닝 알고리즘은 그저 무력할 뿐이다.


DARPA는 원래 ‘미군의 기술적 우위와 전쟁 수행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기술을 개발하는 역할을 하는’ 부처이지만, DARPA에 의해 개발된 기술이 실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성공적으로 용도 변경된 경우가 많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전쟁 상황에서의 통신망 유지를 위해 개발된 기술인 아파넷(ARPANET)은 인터넷의 모태가 되었고, 이외에도 애플의 시리, 디램(DRAM), 마이크로 하드 드라이브와 같은 기술들 역시 DARPA로부터 유래하였다. 이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DARPA에서 개발된 기술들은 스마트시티에서도 유용하게 이용된다. GPS, 스마트 조명 및 에너지를 위한 에너지 그리드, 화학, 생물학, 방사선 센서들, 위협을 감지하는 유전자 변형 식물 등은 모두 DARPA 연구의 산물이다. 스마트시티와 군사적 연구 사이의 이러한 연결은 오늘날에도 매우 활발하다. 예를 들어 최근 DARPA에서는 ‘물, 전력, 교통, 통신, 인터넷’과 같은 스마트시티의 ‘주요 사회 기반 시설’에 ‘무선 통신망을 통해 실시간 데이터와 정보를 제공’하는 데 있어서 ‘유인기와 무인 항공기’ 중 누가 더 우월한지를 비교하는 CASCADE(Complex Adaptive System Composition and Design Environment)라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두 경우 모두 복잡계 역학의 수학적 기법을 활용한다. DARPA는 트위터를 통해 다음과 같은 도발적인 문장을 남겼다. “스마트시티와 공중전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복잡하고 적응력이 뛰어난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점이다.(What do smart cities and air warfare have in common? The need for complex, adaptive networks.)”

이러한 두 가지 비전, 즉 센서로 가득 찬 전쟁터, 그리고 기계화∙상호 연결∙지능을 갖춘 스마트시티는 모두 분산 센서 및 광범위 데이터 수집을 통해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전에서 과연 사람의 역할은 무엇일까? 사람은 전쟁터에서나 스마트 기술의 데이터 추출 과정에서나 늘 가장 먼저 희생되는 존재였다.

센서 네트워크로 인하여 이제 공간과 환경의 빛, 온도, 습도, 소리, 동작과 같은 변화는 쉽게 감지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네트워크는 사람의 신체와도 유사한데, 왜냐하면 네트워크가 환경적 변화를 인식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변화를 측정하고 판단을 내리며 그에 따라 반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스마트시티 안에서 사람의 역할은 무엇일까? 우리는 단순히 네트워크에 필요한 데이터를 내어주기만 하면 될까? 예수회 사회사학자 미셸 드 세르토(Michel de Certeau)는 1980년 그의 저서 《일상생활의 실천(Practice of Everyday Life)》에서 도시에 살고 있는 ‘평범한 거주자’들은 권력자들이 그들을 ‘천상의 눈(celestial eye)’으로 감시하려는 시도에 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데이터를 만든 사람보다 데이터를 더 중요시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이 현재와 미래의 ‘스마트시티’에 기여할 수 있는 넓은 시야와 잠재력을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진정한 ‘스마트’ 시티는 시스코(Cisco)나 아마존(Amazon)과 같은 대형 기술회사가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도시에 제공하는 물류 및 정보 네트워크에 있는 것이 아니다. 도시의 스마트함은 도시에 거주하는 다양한 성별, 문화, 계층의 사람들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다. 부유하고 복잡하며 심지어는 민감한 정체성을 가진 많은 사람들에 의해 마침내 도시는 그 자체의 모습으로 구성된다.

이 글을 쓴 크리스 솔터는 예술가이자 취리히 예술대학교의 몰입예술 전공 교수이다. 그의 최근작 《감지하는 기계: 센서는 어떻게 우리 일상이 되는가(Sensing Machines: How Sensors Shape Our Everyday Life)》가 MIT 프레스에서 출판되었다.

by Chris Salter

미리보기 3회1회

MIT Technology Review 구독을 시작하시면 모든 기사를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