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기후가 불러오는 전력난 위기
최근 맹렬한 폭염으로 미국 대다수 지역이 역대 최고기온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일부 취약 지역에서는 전력 공급이 중단될 위기에 처할 정도로 전력 공급에 과부하가 걸리고 있다.
다행스럽게 올여름에는 아직 정전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여러 작은 문제들과 위기의 순간들은 산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에너지를 빨아들인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전기 소모량이 큰 에어컨의 사용량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또 날이 지나치게 뜨거우면 발전소의 출력이 감소하고, 변압기가 고장 나며, 송전선이 늘어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외에도 북미전력계통신뢰도협회(North American Electric Reliability Corporation, NERC)가 발표했듯이 미국 내 광범위하게 나타난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수력 발전의 가용 가능성이 크게 감소했다.
이 문제가 금방 나아지지는 않을 듯하다. NERC 보고서에 따르면 다수의 전력망 운영자들이 여름 성수기 수요를 충족시키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추후 정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전력망들은 산발적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노후화되어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극심한 이상기후가 잦아지고 있는 위험 속에서, 사람들이 조명과 난방, 에어컨을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전력망 개선이 절실하다. 이 많은 문제를 완화할 수 있는 한 가지 분명한 방법은 광역 전력망을 보다 긴밀하게 통합하여 장거리 송전선을 더 많이 연결하는 것이다.
워싱턴 D.C.에 위치한 싱크탱크 니스카넨 센터(Niskanen Center)에서 송전 문제를 연구하는 리자 리드(Liza Reed)는 “한 지역에서 생산된 전기를 훨씬 더 넓은 지역에 걸쳐 공유할 수 있다면, 고객들이 에어컨을 일제히 가동할 때 혹은 폭염, 산불, 허리케인 및 기타 사건, 사고로 인해 발전소나 연료 공급선에 문제가 생겼을 때도 필요한 곳에 전력을 원활히 공급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장거리 송전 및 전력망 연계를 강화하기까지 극복해야 할 여러 난관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여러 도시, 카운티 및 주를 가로지르는 송전선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해당 경로 안의 사유지 및 공공 부지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또한 중앙 감독 기관의 통제를 원하지 않는 지역 당국을 설득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텍사스의 사례
미국 전력망이 신뢰성을 지적 받은 것은 처음이 아니며, 특히 최근 몇 년 동안에는 극심한 무더위와 한파로 인해 미국 전력계통의 취약점이 여러 차례 드러난 바 있다. 이때마다 기온이 급격히 상승 또는 하강함에 따라 수천 명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전력을 공급받지 못했다.
한 가지 근본적인 문제는 기존의 전력망이 매우 분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는 동부 전력망(Eastern Grid), 서부 전력망(Western Grid), 텍사스 전기신뢰성위원회(Electric Reliability Council of Texas, ERCOT)의 세 가지 주요 전력망이 있다. 그러나 앞선 두 전력망 내에도 캘리포니아 독립시스템운영자(California Independent System Operator, CAISO), 사우스웨스트 파워풀(Southwest Power Pool), PJM 인터커넥션(PJM Interconnection), 뉴욕 ISO(New York ISO) 등과 같은 수많은 개별 광역송전기구들(regional transmission organizations)이 있다.
이러한 전력망들은 서로 다른 규제 기관, 법제 및 시장 구조하에서 복잡한 네트워크망을 형성해 운영되고 있으며, 전력망들 사이의 상호 연결망은 대체로 빈약하다.

특히 텍사스 지역의 ERCOT은 더욱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왜냐하면 텍사스주의 지역 정치인들, 시민들, 전력 회사들 사이에서는 추가적인 경쟁을 피하고, 다른 주의 번거로운 규제와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deral Energy Regulatory Commission, FERC)의 감독을 거부하려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드도 지적한 바 있듯이, 텍사스주의 지난 전력 중단 사태는 앞으로 기후 조건이 점점 심각해짐에 따라 앞으로 어떠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지를 보여 주는 좋은 예다.
텍사스 전력망 사업자는 이달 초 무더위로 인해 전기 수요가 급증하여 순환 정전이 필요한 순간이 다가오자 고객들에게 전기 사용량을 줄여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했다. 이러한 상황은 바람이 약해지고, 구름이 햇빛을 가리며, 화석 연료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던 탓에 더욱 악화되었다.
기온이 섭씨 37℃ 이상에 육박하는 더위 속에서 에어컨을 가동할 전기가 차단되면, 사람들이 열사병 및 사망 위험에 처하는 등 매우 현실적인 위험이 발생하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달에는 전기 공급이 중단되지는 않았지만, 지난겨울 텍사스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2021년 초 극심한 눈 폭풍 및 전력 공급망의 비상 체계 부재로 인해 약 400만 명의 주민이 정전을 겪었으며, 이 중 많은 이들은 단수 및 난방 공급 중단도 함께 겪었다. 수백 명의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전력 분야 컨설팅 회사인 ‘그리드 스트래티지스(Grid Strategies)’의 지난해 분석에 따르면, 텍사스 전력망 사업자는 미국 중부 지역의 송전망과 전력 시장을 주로 관리하는 사우스웨스트 파워풀로부터 겨울 폭풍 전후로 약 1,200메가와트의 전력만을 수입할 수 있었다. 한편, 미국 중서부 지역의 전력망 업체인 MISO(Midcontinent Independent System Operator)는 비슷한 기상 조건 속에서도 다른 전력망과의 상호 연결이 좀 더 잘 갖추어져 있던 덕택에 PJM, 테네시 밸리 오소리티(Tennessee Valley Authority) 및 기타 지역 운영자 등으로부터 텍사스 전력망 사업자보다 15배 더 많은 전기를 수입할 수 있었다.
그리드 스트래티지스의 다른 보고서에서는, 기가와트 규모의 전기를 송전할 수 있는 송전선이 갖추어져 있었다면 10억 달러(약 1조 3,000억 원)의 전기 비용이 절감되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보통 메가와트-시 당 10달러에서 50달러 수준이던 도매 전기요금이 폭풍이 몰아치는 동안 메가와트-시 당 9,000달러(약 1,170만 원)까지 치솟았기 때문이다. (미국 평균 주택 소유자는 한 달에 1메가와트 정도 소비한다.)
이런 문제가 물론 텍사스 지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2020년 여름, 캘리포니아 독립시스템운영자(CAISO)는 극심한 폭염 동안 순환 정전을 시행해야 했다.
CAISO는 다른 전력망으로부터 전기를 송전받음으로써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은 막을 수 있었지만, 태평양 북서부의 송전선이 손상된 탓에 북부 지역의 전력을 활용하지는 못했다. 또한 사우스웨스트 파워풀 전력망과의 송전선 용량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그곳의 풍부한 풍력 자원을 충분히 활용할 수 없었다고 그리드 스트레티지스는 지적했다.
기타 이점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극단적 기후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단전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전력망 상호 연결 강화 이외에도 여러 가지 전력망 개선 작업이 필요하다. 우리는 재생에너지 발전소 및 에너지 저장 프로젝트를 건설하고, 전력망 모니터링 시스템을 현대화하여 시시각각 변하는 수요와 공급량에 대응해야 한다. 또한 지역 분배망을 강화하고, 전력 공급이 부족해지는 상황에서는 소비자들이 수요를 줄이도록 장려하거나 요구할 수 있는 보다 효과적인 수단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미국 전역에 장거리 송전선을 더 많이 건설하고, 국가 전력망을 더 단단히 엮는다면 얻을 수 있는 여러 추가적인 이점이 있다.
여러 연구에 의하면, 먼저 전체 시스템 비용과 전기 가격이 절감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왜냐하면 전력 사업자들이 여러 전력 공급원 중에서 가장 저렴한 곳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를 통해서 지역 발전소 건설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또한 전력망이 풍력이나 태양광에너지처럼, 공급이 일정치 못한 에너지원으로부터 얻는 전력에 더 크게 의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원거리 풍력, 태양광, 수력 또는 지열 등은 하루 또는 계절에 따라 전력의 공급망이 일정하지 않다는 단점이 있지만, 만약 지역 전력망이 다양한 전력원과 밀접하게 연결될 수 있다면 시간에 따라 전력 공급원을 전환함으로써 보다 안정적으로 재생 에너지 전력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송전 능력이 개선되어 더 넓은 지역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게 되면, 전력의 수요가 증가하고 예측 가능해진다. 이에 따라 재생 에너지 생산 업체들은 수요가 모자라는 시기에 전력 생산량을 줄일 필요가 없어지며, 이를 통해 태양광 및 풍력 발전소 증설을 유도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어떻게 증설할까?
그렇다면 상호 송전망 설치를 가로막던 장벽들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지난 2021년 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조 달러(약 1,308조 원) 규모의 인프라 법안에 서명했다. 이 법안에는 송전 개발 프로젝트를 위한 수십억 달러(수조 원) 자금 지원, 리볼빙 대출 제도, 송전 제약 완화를 약속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함에 있어 미국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에 더 많은 재량권을 부여하는 것 등 몇 가지 도움이 될 만한 조항들이 있다.
이번 주 MISO의 이사회는 중서부 지역 전체에 걸쳐 전력망을 잇는 17개의 송전 개발 프로젝트에 100억 달러(약 13조 원) 이상의 자금을 투자하는 것을 승인했다.
다른 입법안들은 논의 중에 있다.
지난 7월 27일 이 법안의 통과를 위해 중대한 진전이 있었고, 현재 이 법안에는 녹색 에너지 관련 프로젝트를 위한 수천억 달러(수백조 원) 규모의 지원금이 포함되어 있다. 기후 관련 조치를 지연시키던 주요 인물인 조 맨친(Joe Manchin) 상원의원의 성명에 따르면, 앞으로 ‘송전, 파이프라인, 수출 시설에 이르기까지 모든 에너지 인프라가 효율적이며 책임감 있게 건설될 수 있도록 하는 개선 법안’을 진행하자는 구두 합의도 있었다고 한다.
7월 초, 일리노의주의 숀 케이스튼(Sean Casten) 하원의원을 비롯한 여러 의원들은 국가 전력망의 재난 상황에 대한 회복력을 강화하기 위한 법안들을 발의했다. 이는 FERC가 ‘송전을 계획하고 있는 지역 간에 최소 송전 용량’을 확립하기 위한 법률을 제정하도록 하여, 극단적 이상 기후의 위험성이 증가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전력망이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케이스튼은 한 인터뷰에서 차량 충전 및 건물 난방에 사람들의 전력 의존도가 높아짐에 따라 다가오는 수요 급증을 감당하기 위해 미국이 전력 시스템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케이스튼은 “우리는 엄청난 규모의 전력 생산이 필요할 것”이라며 “기후변화로 인해 전력망이 현재의 수요를 충족시키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전력망 사이의 연결을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할 경우, 전력 부하가 크게 증가할 때 전력망이 훨씬 더 취약해질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송전 분야 연구자들과 지지자들은 프로젝트의 진행 속도를 앞당길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제시했다. 고속도로, 철도 등 기존에 점유권을 확보하고 있는 선로를 중심으로 송전선을 설치하는 것이 그 예다.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흐르는 전기의 양을 간단하게 늘릴 수 있는 방법들도 있다. 현재의 용량이 낮은 송전선을 고용량 송전선으로 교체하는 것이다. VEIR이라는 한 스타트업은 고온초전도테이프(high-temperature superconducting tape)와 새롭게 개발된 냉각 기술을 사용하여 좁은 선로에서도 더 먼 거리에 걸쳐 더 많은 전기를 공급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이 모든 조치들은 분명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되겠지만, 지금의 심각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조치들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국가 전력망 연계를 위한 막대한 투자와 급진적인 건설 규제 완화 조치일 것이다.
해당 지역의 정치적 현실
오스틴 텍사스대학 부설 에너지연구소(Energy Institute at the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캐리 킹(Carey King) 부소장은 정치적으로 실현 가능하지 않을 경우, 전력망 상호 연결로 인한 여러 가지 기술적 장점들은 결국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당장 오늘부터 장거리 송전선의 설치를 추진한다고 해도 행정 당국의 승인까지만 10년이 넘게 걸릴 수 있으며, 이로 인해 비용이 크게 상승하고 혜택이 지연될 것이다. 그리고 킹과 다른 사람들에 의하면, 텍사스에서는 지역 정치인들과 전기 회사들이 다른 전력망과 통합하거나 다른 주의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는 생각에 반감이 심하다고 한다.
대신 텍사스 전력 부문은 노후화된 발전소를 보수 및 대체하고, 주요 인프라의 방한 채비를 갖추고, 비상시를 대비하여 비축해 놓은 천연가스 시설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며, 무엇보다도 훨씬 더 많은 에너지 저장고를 건설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텍사스처럼 사업자가 생산하는 전력에 대해서만 비용을 지불하는, 느슨하게 규제된 ‘전기 전용 시장(electricity-only market)’에서는 그중 많은 부분이 실행하기 어렵다. 이러한 구조하에서는 기업들이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력망 강화 조치에 투자해도 아무런 이윤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텍사스는 여전히 독자적인 행보를 걷고 있다. 그러나 폭염, 홍수, 산불, 폭풍으로 인해 전력망이 지속적으로 과부하가 발생하고 시민들의 생명과 건강이 위험에 처하게 됨에 따라, 전력 연계를 강화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점은 텍사스 및 다른 지역에서도 갈수록 분명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