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AIST, 조합 바꿔 성질 맞추는 ‘맞춤형’ 반도체 전극 소재 개발…저전력 반도체 길 연다
반도체의 전극은 지금까지 ‘기성복’이었다. 금속을 하나 고르면 그 성질도 함께 정해졌다. 치수에 맞춰 옷을 짓듯, 전극의 성질을 소자에 맞춰 짓는 길이 열렸다.
반도체에서 전류를 켜고 끄는 전극을, 소재 조합을 바꿔 성질을 맞출 수 있는 ‘맞춤형’으로 만드는 길이 열렸다. KAIST는 화학과 박선아 교수 연구팀이 국립부경대학교, POSTECH, 연세대학교 연구진과 공동으로, 전기가 흐르는 금속-유기 구조체(MOF, 금속과 유기 분자를 조립 블록처럼 연결한 소재)를 얇고 정밀하게 가공해 반도체의 게이트 전극으로 구현했다고 26일 밝혔다.
트랜지스터는 전기 신호에 따라 전류를 켜고 끄거나 조절하는 반도체의 기본 부품이고, 게이트 전극은 여기에 전압을 걸어 전류의 흐름을 조절하는 부분이다. 지금은 전기가 잘 흐르는 금속이 주로 쓰이지만, 금속은 소재마다 성질이 정해져 있어 반도체가 요구하는 조건에 맞춰 바꾸기 어렵다. 연구팀은 조합을 바꾸면 성질이 달라지는 MOF로 이 한계를 넘었다. 연구 결과는 재료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즈(Advanced Materials)’에 9월 15일 게재됐다.

왜 ‘맞춤형’인가…조합 바꾸면 성질이 달라지는 소재
출발점은 금속 전극의 한계다. 현재 게이트 전극에는 전기가 잘 흐르는 금속이 주로 쓰인다. 하지만 금속은 소재마다 전자적 성질이 고정돼 있어, 한 번 소재를 정하면 반도체가 요구하는 조건에 맞춰 자유롭게 바꾸기 어렵다. 옷으로 치면 기성복을 골라 입는 셈이다.
전도성 MOF는 다르다. 금속과 유기 분자를 조립 블록처럼 연결한 소재여서, 블록의 부품을 바꾸면 완성품의 성질이 달라지듯 금속과 유기 분자의 조합을 바꾸면 전기적 성질도 조절할 수 있다. 그중 하나가 ‘일함수’다. 일함수는 전자가 소재 밖으로 나오기 위해 넘어야 하는 ‘문턱’의 높이에 해당하는데, 이 높이가 반도체가 켜지는 전압에 영향을 준다. 소재 조합을 바꾸면 반도체가 원하는 전압에서 켜지도록 전극을 설계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두 개의 기술적 장벽이었다. 먼저 주로 분말 형태로 얻어지는 MOF를, 소자 제작에 맞게 표면이 매끄럽고 두께가 균일한 박막으로 만들어야 했다. 여기에 더해 필요한 부분만 남도록 정밀하게 가공해야 했다. 좋은 옷감이라도 고르게 짜고 정확히 재단하지 못하면 옷이 되지 않는 것과 같다.
연구팀은 반도체 공정을 그대로 끌어왔다. 먼저 기체 상태의 원료를 반응시켜 MOF를 얇고 고른 박막으로 만드는 ‘화학기상증착(CVD)’을 썼다. 이어 옷감에 도안을 그리고 재단하듯, 빛으로 원하는 미세 패턴을 새기는 ‘포토리소그래피’와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내는 ‘식각’ 기술을 적용했다. 가공 중 소재 손상을 줄이기 위해 식각액도 둘로 나눠 썼다. 비교적 천천히 반응하는 과황산암모늄으로 기본 모양을 만들고, 빠르게 반응하는 크로뮴 식각액을 짧게 써 남은 물질을 정리했다. 이렇게 가공한 뒤에도 소재의 구조와 화학적 상태, 전기가 흐르는 성질이 대부분 유지됐다.

트랜지스터 23개 모두 작동…백금 전극에 준하는 성능
성과는 세 종류 반도체에서 확인됐다. 연구팀은 이 전극을 이황화몰리브덴(MoS₂), 이텔루륨화몰리브덴(MoTe₂), 산화물 반도체(IGZO) 등 서로 다른 세 종류의 반도체에 적용해 모두 작동하는 것을 확인했다. 특정 반도체에만 맞는 것이 아니라 여러 소자에 두루 쓸 수 있음을 보인 셈이다.
기존 금속 전극과의 비교도 이뤄졌다. MoS₂ 반도체에서 전류가 흐르는 길은 그대로 두고, 이를 조절하는 전극만 새 MOF 소재와 기존 백금으로 각각 만들어 견줬다. 그 결과 전류가 흐르기 시작하는 전압과 전하가 이동하는 특성 등이 비슷하게 나타났다. 새 소재로 만든 전극도 기존 금속 전극처럼 전류를 조절할 수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여러 개를 한꺼번에 만드는 시험도 통과했다. 하나의 기판에 IGZO 트랜지스터 23개를 배치하고, 한 번의 도안 가공으로 각 트랜지스터에 필요한 전극을 모두 만들었다. 그 결과 23개가 모두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한 벌만 지어 본 것이 아니라, 같은 공정으로 여러 벌을 동시에 지어도 모두 입을 수 있었던 셈이다.
오래 버티는지도 살폈다. 안정성 시험에서 IGZO 트랜지스터는 게이트 전압을 400회 연속으로 구동한 뒤에도 안정적인 성능을 유지했고, MoS₂ 트랜지스터는 약 1년 동안 대기 중에 보관한 뒤에도 작동 특성이 유지됐다. 박선아 교수는 “이번 연구는 전도성 MOF가 단순히 전기가 흐르는 신소재에 머무르지 않고, 기존 반도체 공정으로 가공해 실제 전계효과 트랜지스터의 전극으로 사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 연구”라며 “앞으로 소자의 목적에 맞춰 전자적 특성을 설계할 수 있는 맞춤형 전극으로 발전시켜 차세대 반도체 소자에 폭넓게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