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료연구원, 비싼 중희토류 없이 전기차·로봇용 고성능 영구자석 만드는 기술 확보
전기차 모터와 로봇 관절을 움직이는 강한 자석에는 비싼 희토류가 꼭 들어간다. 그중에서도 디스프로슘·터븀은 값도 비싸고 몇몇 나라에만 몰려 있다. 이 ‘비싼 재료’를 빼는 기술이 나왔다.
값비싼 중희토류를 쓰지 않고도 고성능 네오디뮴-철-붕소(Nd-Fe-B) 영구자석을 만드는 핵심 기술이 개발됐다. 한국재료연구원(KIMS) 나노재료연구본부 김수민·김태훈·이정구 박사 연구팀은 자석의 성능을 높이는 데 유리한 초미세분말 제조부터, 분말을 한 방향으로 정렬해 굳히는 소결까지 핵심 공정을 통합 개발해 중희토류를 완전히 배제한 고성능 영구자석 제조 기반을 마련했다고 23일 밝혔다.
영구자석은 전기차 구동 모터, 로봇 관절, 풍력발전기 등에 쓰이는 핵심 소재로, 그중 Nd-Fe-B 자석은 강한 자기력을 낸다. 다만 전기차 모터처럼 뜨거운 환경에서도 자성을 잃지 않으려면 ‘보자력’을 높여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이를 위해 디스프로슘·터븀 같은 중희토류를 넣어 왔다. 이 기술은 전기차·로봇용 자석의 해외 공급망 의존도를 낮추고 국산화를 앞당길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분쇄 대신 ‘처음부터 작게’…중희토류 없이 성능 높이는 길
문제의 뿌리는 공급망에 있다. Nd-Fe-B 자석이 높은 온도에서도 자성을 유지하려면 보자력(coercivity, 반대 방향의 자기장을 받아도 자성을 잃지 않고 버티는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그동안은 이를 위해 디스프로슘·터븀 같은 중희토류를 첨가했다. 하지만 이 원소들은 값이 비싸고 생산·공급이 일부 국가에 집중돼 있어, 대체 기술이 절실했다.
연구팀은 중희토류를 넣는 대신 자석 내부의 ‘결정립’을 잘게 만드는 쪽을 택했다. 결정립(자석 내부를 이루는 작은 결정 알갱이)이 작아질수록 자화 방향이 쉽게 바뀌는 현상이 억제돼 자성을 유지하는 능력이 높아진다. 비싼 원소를 더하는 대신, 자석의 구조를 미세하게 만들어 같은 효과를 노린 것이다.
관건은 ‘얼마나 작게 만드느냐’였다. 기존에는 합금을 기계로 부숴 분말 크기를 줄였는데, 이 방식으로는 입자를 작게 만드는 데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발상을 바꿔, 합금을 부수는 대신 미세한 입자를 처음부터 직접 합성하는 ‘환원·확산(RD)’ 공정을 활용했다. 희토류 산화물에서 산소를 떼어낸 뒤 철·붕소와 반응시켜 자석 분말을 직접 만드는 방식이다.
여기에 그동안의 약점도 해결했다. 기존 RD 공정의 주요 한계였던 분말의 산화 문제를 새로운 후처리 기술로 풀어, 약 1마이크로미터(μm) 크기의 고순도 Nd-Fe-B 초미세분말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잘게 부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입자를 처음부터 빚어, 분쇄 공정의 크기 한계를 넘어선 셈이다.

작은 분말을 ‘줄 세워 굳히는’ 공정까지…국산화 기반 마련
좋은 분말을 만들었다고 끝이 아니다. 분말을 자석으로 만들려면 입자들을 한 방향으로 가지런히 정렬한 뒤 굳혀야 한다. 그런데 분말이 작아질수록 입자끼리 서로 달라붙고 마찰이 커져, 자기장 안에서 한 방향으로 줄 세우기가 어려워진다. 작게 만들수록 다루기는 더 까다로워지는 역설이다.
연구팀은 두 가지로 이를 풀었다. 분말 표면에 윤활제를 입혀 입자들이 잘 미끄러지도록 하고, 자기장의 방향이 번갈아 바뀌면서 세기는 점차 약해지는 ‘감쇠 교류 자장’을 걸어 입자들의 정렬도(배향성)와 성형체의 안정성을 높였다. 미끄러짐을 돕고 흔들어 주며 입자들을 한 방향으로 세운 것이다.
마지막 걸림돌은 윤활제가 남긴 흔적이었다. 윤활제에서 유래한 잔류 탄소가 남으면 열처리 후 보자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연구팀은 수소 보조 공정으로 이 잔류 탄소를 줄여, 초미세분말로 고성능 소결자석을 만드는 기술을 확보했다. 분말 제조부터 정렬·소결까지 이어지는 공정의 한계를 단계마다 하나씩 넘은 것이다.
이 성과의 의미는 ‘자립’에 있다. 김수민 박사는 “이번 연구성과는 고성능 Nd-Fe-B 영구자석 제조에 필요한 초미세분말 합성과 분말 정렬·소결 공정의 기술적 한계를 각각 극복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고가의 중희토류에 의존하지 않고 자석의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새로운 기술적 접근법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공정 간 연계 및 양산 기술이 확보되면 전기자동차 구동 모터와 휴머노이드 로봇 등 고성능 영구자석이 필요한 첨단산업 분야에 활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팀은 관련 기술로 총 9건의 특허를 창출했다.